삼성이 22일 쇄신안을 발표하면서 그룹 지배구조의 변화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동안 그룹 경영권의 핵심 보루였던 순환출자형 구조를 향후 4∼5년 내에 해소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삼성은 또 당장은 어렵지만 지주회사 전환도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쇄신안에 담았다.

경제계는 지금까지 삼성 내부에서조차 금기시됐던 지배구조 개선이 공론화됨에 따라 향후 삼성이 어떤 지배구조를 갖추게 될 지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 일각에서는 순환출자 구조를 개선하기로 한 2012년께 확실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고 있다.

◆“순환출자 구조는 4∼5년내 해소”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삼성이 내놓은 첫번째 대책은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이학수 부회장은 “삼성카드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에버랜드 지분(25.64%)를 4∼5년 내에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이 계획에 따르면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현 순환출자 구조는 완전히 끊기게 된다.

삼성의 지배구조가 순환형 구조가 아닌 수직형 구조로 바뀌는 셈이다.

이 경우 이재용 전무의 그룹 각 계열사에 대한 장악력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현재 이 전무는 순환출자형 구조의 정점에 있는 에버랜드 지분 25.1%를 확보하고 있지만,순환출자 고리가 끊어지면 이 전무는 에버랜드 최대주주의 지위만 갖게 딜 뿐 나머지 게열사에 대한 영향력은 없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이날 쇄신책은 삼성그룹이 이 전무의 그룹 장악력 약화까지 감내하고서도 지배구조를 손질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받아 들여진다.

그룹 관계자는 “그동안 이 회장이 소규모의 지분을 보유하고도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그룹을 지배해왔다는 일각의 비판을 과감히 수용한 조치”라고 분석했다.

◆“지주회사 전환은 당분간 어렵다”

삼성은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기로 했지만,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에 대해서는 “당분간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학수 부회장은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데만 20조원이 필요하고 그룹 경영권이 위협받는 문제가 있어 현실적으로 지금 추진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복잡하게 얽혀있는 계열사간 출자구조를 감안할 때 단기적으로는 실행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삼성그룹은 삼성생명이나 에버랜드를 지주회사로 만들 수는 있지만 삼성전자를 자회사로 둘 수 없도록 한 금융지주회사법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최근 정부가 비은행지주회사도 제조업체를 자회사로 거느릴 수 있도록 법률 개정을 추진하면서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은 커졌지만 여전히 실현 가능성이 적다는 게 삼성의 입장이다.

예컨대 현행 법률상 삼성생명이 지주회사로서 삼성전자를 자회사로 거느리려면 전자 지분 30%를 확보해야 한다.

현재 보유한 전자 지분 7.26%외에 22.79%를 더 확보해야 하는데,이를 위해선 무려 22조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경영권 방어 문제도 삼성의 고민이다.

그룹 관계자는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는 과정에서 삼성전자 등 핵심 계열사의 지분을 확보해야 하는데,현 주가 등을 감안할 때 모든 계열사의 지분을 충분히 확보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삼성은 현재의 순환출자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많은 만큼 장기적으로 지주회사 전환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은행업 진출 않겠다”

삼성은 일각에서 제기됐던 은행업 진출도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대신 생명 화재 카드 등 기존 금융계열사의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삼성이 이처럼 은행업 진출불가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비판적인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그동안 시민단체 등은 정부가 금산법(금융산업의 구조게선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할 때마다 “삼성의 은행 진출을 돕기 위한 조치”라고 비판해왔다.

최근 이명박 정부가 다시 금산분리 정책을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삼성에 특혜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이날 삼성이 은행업 진출을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함에 따라 향후 이런 비판은 없어질 전망이다.

◆삼성 지배구조 장기 전망은?

결국 이번 쇄신안을 통해 삼성은 단기적으로는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한다는 정도의 지배구조 개선책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인 지배구조는 좀 더 고민한 후에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순환출자 구조 해소 방안까지 내놓은 상황에서 삼성이 이재용 전무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이다.

이와 관련,삼성 안팎에서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거나 전자와 금융부문을 분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흘러나온다.

먼저 삼성이 지주회사 전환 카드를 선택할 경우 방안은 삼성전자 지분 7.26%를 보유한 삼성생명을 금융지주회사로 만드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에버랜드를 주주회사로 전환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삼성생명 지분과 삼성전자 지분을 모두 취득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과 전자 부문을 계열 분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제조업종과 금융업종을 분리시켜 각각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최종적인 지배구조와 관련해서는 지주회사로 갈 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갈 지 아직까지 정해지지 않았다”며 “현재 삼성이 갖추고 있는 경쟁력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간다는 것만 합의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