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 1800선 재돌파 바로 다음날이던 지난 22일, 삼성그룹이 시장에 대형 이슈를 던졌다.

우리 증시에서 삼성그룹은 시가총액 2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 있는 기업군이니 발표 내용에 증시는 물론 사회 전체가 큰 관심이다.

삼성그룹의 쇄신안은 ▶삼성그룹 오너인 이건희 회장의 퇴진을 비롯, ▶그룹 전략기획실 해체 ▶삼성카드가 보유중인 에버랜드 지분 매각으로 지배구조의 순환출자고리 차단 ▶은행업 진출포기 ▶이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전무의 승계 유보 등을 담았다.

삼성의 이 같은 경영체제 변화에 경영공백 등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증시는 언론의 호들갑(?)과는 달리, 차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발표 당일이던 지난 22일과 금일 삼성그룹주들의 주가가 이를 말해준다.

전날 삼성그룹주가 대체로 하락하긴 했다. 그룹 지주사 후보로 꼽혔던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이 지주사 추진을 늦추겠다는 발표에 9%대 급락했다. 삼성증권과 삼성화재는 각각 4%대, 3%대 하락했고, 삼성전기와 삼성중공업은 약보합세였다.

그러나 핵심 IT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오히려 0.15% 올랐다. 삼성그룹 지배구조상 순환출자고리 중 하나인 삼성카드는 에버랜드 지분의 매각 가능성 부각으로 1.27% 상승하며 삼성그룹 쇄신의 최대 수혜주로 떠올랐다.

하루 지난 23일 오전 11시 6분 현재, 전날 하락했던 삼성그룹주들은 대부분 반등하고 있다. 비상장인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비은행 금융계열사들이 지주사체제로 전환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삼성화재가 3%대, 삼성증권이 2%대 오르고 있다. 전날 급락했던 삼성물산도 강보합세로 돌아서며 급락에서 진정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날 약보합이긴 하지만, 국내외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쇄신안이 삼성전자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의 강문성 애널리스트는 “전날 삼성그룹주가 약세였지만, 지수 하락의 주 요인은 아니었다”고 풀이했다. 하락은 했으되, 시장 전반에 충격을 줄 정도의 악재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신영증권의 이승우 애널리스트는 “삼성은 특검이 진행될 때도 그룹주의 절대, 상대 시가총액은 늘었다”고 설명했다.

삼성의 지배구조 문제는 이미 주가에 녹아있는 만큼 일시적인 경영 공백은 크게 우려할 부분이 아니며, 오너의 경영 일선 후퇴를 기업 경쟁력 약화나 그룹 운명 위기로까지 확대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기업 펀더멘털 외적인 부분에 주목하던 흐름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어 긍정적이라고 봤다.

대신증권의 곽병열 애널리스트도 “단기적으로 일부 계열사들의 주가가 이번 쇄신안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개별 기업들의 경쟁력 향상 등의 차원에서 긍정적”이라는 입장이다.

전략기획실의 해체와 은행업 진출 포기 등 그룹 리스크의 완화 시도는 각 계열사의 자율 경영 및 투명경영 시스템 강화로 이어질 것으로 판단했다. 주주가치 제고는 물론, 국내 대표 그룹의 발전적 진화가 여타 기업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전문경영인 체제 확립과 순환출자 해소를 통한 지배구조의 선진적 변화 여부 등이 향후 삼성 관련주의 선전을 점치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면서, 그룹사의 효율적 자원 배분과 투명성 제고에 성공한 LG그룹 사례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무튼 삼성그룹을 20여 년간 이끌어온 이건희 회장의 퇴진 등 삼성의 쇄신안은 확실히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장에서는 삼성그룹 발표에 심각한 충격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장에 삼성쇼크는 없었다. 단지 그룹 계열사들의 개별종목별 사안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이번 삼성그룹 사태 관련한 주요 포인트 중 하나는 더 이상 시장이 특정 기업군에 좌지우지되지 않을 만큼 성숙했다는 점이 아닌지 말이다.

한경닷컴 이혜경 기자 vix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