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120달러 시대가 현실화되고 있다.

22일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장중 배럴당 119.90달러까지 치솟으며 7거래일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

올 들어 100달러 선을 돌파한 지 넉 달도 안 돼 120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국제유가는 1년 전보다 88%,5년 전보다는 5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전문가들은 단기 조정이 있을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유가 오름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최근 유가 상승세는 수급 불안과 미 달러화의 약세 등 악재가 겹치면서 비롯됐다.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에서 무장세력이 석유 시설을 공격,원유 수급 불안이 깊어지고 있다.

브렌트유가 모이는 스코틀랜드 정유소의 파업계획 소식도 시장을 들썩였다.

장기적인 수급 상황도 밝지 않다.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전세계 석유 매장량의 4분의 1 가까이를 갖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최근 생산 여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사우디는 하루 산유량 520만배럴에 이르는 최대 유전 가와르 유전과 베리 유전 등으로도 개도국의 폭발하는 수요를 충당할 수 없어 동부 쿠라이스 유전 재개발 사업에 희망을 걸고 있다.

개발이 쉽지 않은 지역이라서 해수를 매립하는 첨단 기술을 동원하고 있지만 비용 증가로 애를 먹는 실정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러시아의 원유 생산량은 지난 1분기 1% 줄었으며 영국과 멕시코,노르웨이의 생산도 감소 추세다.

채굴 가능한 지역이 줄면서 유전 개발 비용은 지난 3년간 두 배로 증가했다.

석유 생산이 피크(peakㆍ정점)를 지났다는 분석이 많다.

블룸버그통신은 "예전처럼 개발하기 쉽고 저렴한 석유의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게다가 미 달러화 가치는 이날 유로당 1.60달러 선을 돌파하는 등 1999년 유로화 도입 이후 역대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미 달러화를 기준으로 거래되는 원유가격은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가치 하락분을 만회하기 위해 오르는 경향이 있다.

달러화 약세로 투자자금이 상품시장으로 몰리는 현상도 가속화되고 있다.

영국의 상품전문가 프레드릭 라세르는 "달러에서 빠져 나온 '안티(反)달러' 투자가 유가 상승의 한 원인"이라며 "연금 펀드와 보험 등 장기투자자뿐 아니라 헤지펀드 같은 핫머니들이 상품 투자를 주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장조사업체인 MF글로벌의 존 킬더프 부사장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125달러 돌파도 가능할 것"이라며 "공급 차질 사례가 또다시 발생할 경우 원유시장 강세는 더 심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유가 전망치를 기존 배럴당 평균 95달러에서 105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고유가는 세계경제에 큰 부담을 지울 전망이다.

경기둔화에 물가급등이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도 제기된다.

유가 급등세가 장기화될 경우 새로운 오일쇼크가 도래할 가능성도 있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의 폴 스티븐스 교수는 일본 닛케이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인도 등 신흥경제국의 수요 증가로 5~10년 안에 3차 석유쇼크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현 수급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유가가 두 배 이상 뛸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