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6세를 일기로 타계한 피터 드러커는 '경영의 구루''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렸지만 그의 학문세계와 삶은 경영학보다 훨씬 넓고 깊었다.

그는 경영학 외에도 철학·경제학·정치학·사회학·동양예술 등을 강의했고,기자와 컨설턴트로서 명성을 날렸다.

인문학과 예술에도 조예가 깊어서 드러커 연구자인 이재규 전 대구대 총장은 그를 만날 때마다 경영과 역사,예술,문학,인생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한다.

이런 지적 배경을 바탕으로 드러커는 스스로 사회생태학자이기를 희망했다.

이 책은 평생 40여권의 책을 쓴 드러커가 30세에 내놓은 첫 저서다.

1939년 미국에서 초판이 나온 이후 전 세계에서 다양한 언어로 번역됐고 출간한 지 근 70년이나 되는 책을 새삼 번역한 이유에 대해 역자는 "드러커 사상의 뿌리가 이 책에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드러커는 이 책에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대공황 시기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의 시기에 유럽에서 전체주의가 등장한 이유와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

여기서 전체주의란 무솔리니의 파시즘,히틀러의 나치즘,옛 소련의 스탈린주의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에 따르면 파시즘과 나치즘은 그때까지 유럽의 정신적·사회적 질서의 토대였던 '경제인 사회'와 '경제인'의 개념이 붕괴된 결과로 등장했다.

그가 말하는 경제인이란 유럽 사회가 유사 이래 지켜온 가치인 자유와 평등의 실현을 위해 설정했던 인간모델의 하나다.

18세기 산업혁명과 유럽의 대표적인 인간모델로 부상한 '경제인(Economic man)'은 경제적 만족만이 사회적으로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경제인은 경제적 지위와 경제적 특권,경제적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 위해 인간은 전쟁도 하고 죽을 각오도 한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자유경쟁이라는 경제적 자유를 통해 물질적 번영은 이뤘지만 자본주의는 사회적·경제적 평등을 실현하지 못했고,자본주의의 종말을 예언하며 사회주의가 내세운 '계급 없는 사회' 또한 허구로 밝혀졌다.

두 이념 모두 전쟁(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막지 못하고 유럽이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핵심 가치였던 자유와 평등을 달성하지 못하자 파시즘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1차 대전과 대공황은 당대 유럽인들에게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악마의 세력'으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전쟁과 실업을 추방하는 것이 유럽 사회의 최대 목표로 부상했고 이를 위해서라면 자유와 평등도 양보할 수 있다는 태도를 초래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영웅적 인간'을 경제인의 대체 모델로 내세우며 등장한 것이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전체주의라는 설명이다.

이 같은 분석을 바탕으로 드러커는 나치즘과 공산주의의 적은 서구라며 이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비슷한 독일과 소련이 힘을 합치는 독·소 동맹 체결을 정확히 예측했고,전체주의 국가들이 후계자 문제로 붕괴할 것임도 미리 내다봤다.

그러면서 "기존의 경제인 사회를 토대로,그것들을 전제로 자유롭고 평등한 비경제인 사회를 새로 개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가 제시한 21세기 사회와 인간의 모습인 '지식사회'와 '지식 근로자'는 '경제인 사회'와 '경제인' 이후의 인간 모델인 셈이다.

세계를 보는 서른살 청년의 안목이 놀랍다.

역자는 "드러커가 평생 쓴 40여권의 저서들은 이 책에서 분석·예측한 것을 시간을 두고 검증하면서 그 신뢰성과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