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교 < 인하대 교수·경제학 >

지난 21일 이명박 대통령과 일본의 후쿠다 야스오 총리 간 정상회의에서 한ㆍ일 FTA(자유무역협정) 협상 재개 검토가 합의됐다.

일본 측의 강한 요청으로 검토에 합의는 했으나,실제 협상 재개에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우선 한ㆍ일 FTA에 관한 한 2004년 협상이 중단될 당시와 비교해 추진 여건이 바뀐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동안 일본 측이 체결한 FTA 양허내용을 분석해 보면 부분적으로 농업개방을 확대해 왔다.

하지만 농수산물 개방범위는 협상 재개 요인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측면에서는 추진 여건이 오히려 악화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미국과 수준 높은 FTA에 서명했고,유럽(EU)과도 협상타결 국면에 와 있다.

이로 인해 과거에 비해 한ㆍ일 FTA 인센티브가 작아졌다.

또한 지금까지 체결한 협정에서는 FTA 상대국에 대한 수출증대를 협정 체결의 최대 이익으로 국민들에게 홍보해 왔는데,일본과의 FTA에서는 반대로 수입증대의 혜택을 홍보해야 할 판이다.

비록 한국이 무역면에서는 손실을 볼 수 있지만,한ㆍ일 FTA를 통해 동아시아 경제통합 논의를 주도하고,산업구조조정을 촉진시켜 양국 산업의 전략적 제휴를 확대시킬 수 있다.

하지만 손실은 확실하게 노출되는 데 비해,이익은 장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한 측면이 있다.

명백한 손실을 부분적으로 상쇄시킬 수 있는 협력사업이 구체화되지 않는 한 협상 재개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슈들을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협상을 조기에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 제기될 수 있으나,부분적으로나마 정부 간 사전합의가 없이는 실제 협상에서 논의되기 어렵다.

오늘날 체결되는 FTA는 다양한 형태의 협력사업이 포함된다.

한국 측도 일본의 입장변화를 요구하기보다는 다양한 협력사업을 발굴해 일본 측에 제시해야 한다.

지난 2월28일 당시 김한수 외교통상부 FTA 추진단장은 "한ㆍ일 FTA 협상 재개는 농산물 개방과 비관세장벽 개선,산업기술협력 등에 대한 일본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유리한 입장에 있는 일본이 멕시코,말레이시아 등과의 FTA에서와 같이 산업협력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협력사업 요구를 공적개발원조(ODA) 성격의 지원으로 이해해서는 안되며,기본적으로 윈-윈 FTA 형성을 위한 메뉴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한ㆍ미 FTA와 한ㆍ일 FTA를 비교해 보면,많은 난관이 있더라도 협상담당자들이 윈-윈 FTA 도출 가능성을 확신하게 되면 결국 협상을 타결하게 됨을 알 수 있다.

미국이 한국의 한ㆍ미 FTA 협상 개시 요청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한국 정부가 미국의 관심사항인 스크린쿼터를 자발적으로 축소하고,자동차 배기가스 기준 등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조치를 약속함으로써 협상 개시를 합의할 수 있었다는 점을 일본은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협상 전과 협상과정에서 이러한 사항들이 합리적인 수준에서 반영됐다.

한ㆍ일 FTA에 대한 현재의 상황과 논의 수준을 고려하면,조만간 한ㆍ일 FTA 협상이 재개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지만,향후 한·일 관계에 따라 협상 논의가 급진전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더구나 노무현-고이즈미 정부 시절의 냉각된 한·일 관계가 이명박-후쿠다 양 정상의 긴밀도에 따라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러한 기회를 양국 간 FTA 협상 재개로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한·일 동반자 관계에 대한 인식 공유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경제협력 및 중장기 경제통합에 대해서도 한·일 양국은 긴밀히 협의해 나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