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 잇는 家嶪] (10) 매표화학 ‥ 최윤석 대표 1등 비결은 '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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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작은 인주통도 마무리 작업은 손으로"
"평소 아버님은 항상 '세끼 먹고 살 수 있으면 화려하게 사는 것보다는 남을 위해 많이 희생하는 것이 더 부자'라고 가르쳤습니다."
매표화학 최윤석 대표(44)는 "어릴 때에는 멋진 빌딩도 안 짓고 사업도 확장하지 않으면서 사회봉사활동에 관심이 컸던 아버지가 항상 불만이었다"며 선친을 회상했다.
최 대표는 "이제는 아버님의 큰 뜻을 이해한다"며 "가업을 계승했지만 아버님이 생전에 품고 살아가셨던 사회에 대한 애정과 봉사활동도 대를 이어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최상봉 창업주는 '사람은 빈손으로 세상을 떠나는데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고 남을 돕고 살아야 한다'는 철학을 몸소 실천하며 살았다.
그는 생전에 법무부 갱생보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매년 두세 번씩 출소자들의 결혼 비용을 지원하고 직접 주례를 서며 합동 결혼식을 도왔다.
또 20년 동안 중부경찰서 청소년 선도위원을 지내며 지역 청소년들의 지도와 장충동 지역발전을 위해 앞장섰다.
명절이면 어김없이 고아원과 양로원을 찾았다.
이 같은 공로로 대통령이 수여하는 국민 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 같은 아버님의 모습을 보고 자란 때문인지 최 대표도 봉사하는 삶의 자세가 몸에 뱄다.
현재 최 대표는 중부경찰서 장충동 청소년 선도위원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1988년부터 한국어린이 복지재단과 결연을 맺고 소년.소녀 가장과 장애인을 돕는 일에 힘쓰고 있다.
금전적으로 후원하던 학생이 학업을 마친 뒤 희망할 경우 매표화학에 취직시키고 있다.
최 대표는 선친의 가르침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바로 '남에게 보이는 사업은 하지 말고 멋진 건물을 가지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안이 튼튼한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아직도 선친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간다고 밝혔다.
그는 "본래 자상하신 분이셨지만 외아들이다 보니 사랑이 남다르셨다"며 "출생 이후 44년을 같이 살았지만 지금도 종종 사무실에 걸려 있는 부친의 사진과 대화를 나눌 만큼 아버지가 그립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때문에 최 대표는 지난해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담은 시집 '마음으로 부르는 이름'을 발간해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다.
그는 "선친이 중환자실에 1년 동안 고생했는데 열심히 살아왔다가 누워계신 분을 보니까 마음이 아파 조금이라도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 시를 쓰기 시작했다"며 "안타깝게 책이 나오기 직전 돌아가셔서 직접 보시진 못했지만 수익금은 다 독거노인을 위해 사용해 선친의 뜻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평소 아버님은 항상 '세끼 먹고 살 수 있으면 화려하게 사는 것보다는 남을 위해 많이 희생하는 것이 더 부자'라고 가르쳤습니다."
매표화학 최윤석 대표(44)는 "어릴 때에는 멋진 빌딩도 안 짓고 사업도 확장하지 않으면서 사회봉사활동에 관심이 컸던 아버지가 항상 불만이었다"며 선친을 회상했다.
최 대표는 "이제는 아버님의 큰 뜻을 이해한다"며 "가업을 계승했지만 아버님이 생전에 품고 살아가셨던 사회에 대한 애정과 봉사활동도 대를 이어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최상봉 창업주는 '사람은 빈손으로 세상을 떠나는데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고 남을 돕고 살아야 한다'는 철학을 몸소 실천하며 살았다.
그는 생전에 법무부 갱생보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매년 두세 번씩 출소자들의 결혼 비용을 지원하고 직접 주례를 서며 합동 결혼식을 도왔다.
또 20년 동안 중부경찰서 청소년 선도위원을 지내며 지역 청소년들의 지도와 장충동 지역발전을 위해 앞장섰다.
명절이면 어김없이 고아원과 양로원을 찾았다.
이 같은 공로로 대통령이 수여하는 국민 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 같은 아버님의 모습을 보고 자란 때문인지 최 대표도 봉사하는 삶의 자세가 몸에 뱄다.
현재 최 대표는 중부경찰서 장충동 청소년 선도위원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1988년부터 한국어린이 복지재단과 결연을 맺고 소년.소녀 가장과 장애인을 돕는 일에 힘쓰고 있다.
금전적으로 후원하던 학생이 학업을 마친 뒤 희망할 경우 매표화학에 취직시키고 있다.
최 대표는 선친의 가르침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바로 '남에게 보이는 사업은 하지 말고 멋진 건물을 가지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안이 튼튼한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아직도 선친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간다고 밝혔다.
그는 "본래 자상하신 분이셨지만 외아들이다 보니 사랑이 남다르셨다"며 "출생 이후 44년을 같이 살았지만 지금도 종종 사무실에 걸려 있는 부친의 사진과 대화를 나눌 만큼 아버지가 그립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때문에 최 대표는 지난해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담은 시집 '마음으로 부르는 이름'을 발간해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다.
그는 "선친이 중환자실에 1년 동안 고생했는데 열심히 살아왔다가 누워계신 분을 보니까 마음이 아파 조금이라도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 시를 쓰기 시작했다"며 "안타깝게 책이 나오기 직전 돌아가셔서 직접 보시진 못했지만 수익금은 다 독거노인을 위해 사용해 선친의 뜻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