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민간소비와 투자가 눈에 띄게 위축되는 등 내수경기가 심상치 않다.

유가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데다 높은 물가 상승세로 실질 소득이 줄어들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지갑을 닫고 있는 탓이다.

내수는 수출과 함께 우리 경제를 이끌어온 `양 날개'였으나 한쪽 날개가 타격을 입으면서 전체 경제성장도 둔화하는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한국은행도 "경제의 성장 속도가 상당히 꺾였다"고 인정했다.

문제는 정부가 다양한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있지만 내수부진은 단기간 개선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이에 따라 한은이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층 힘을 얻는 것으로 보인다.

◇ 고개 숙인 내수 = 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8년 1.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속보)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각종 내수지표는 대부분 아래로 향해 있다.

민간소비의 경우 전분기에 비해 0.6%, 작년 동기에 비해서는 3.5% 성장하는 데 그쳤다.

이러한 증가율은 각각 2005년 1분기 0.5%(전분기 대비)와 1.6%(전년 동기 대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승용차, 휴대전화 등 내구재에 대한 소비는 늘어난 반면 음식.숙박업과 금융업 등 서비스 소비 증가세가 둔화한 데 따른 것이다.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여파로 라면 등 국내 식료품 가격이 줄줄이 인상되면서 사람들이 음식료품에 대한 지출을 줄였으며 올 들어 국내외 증시가 조정을 받자 금융관련 서비스 이용을 줄였다는 분석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국민의 호주머니 사정이 전반적으로 악화된 데 있다.

임금상승률이 둔화한 가운데 소비자물가가 4%대에 육박하면서 실질소득이 줄어든 탓이다.

여기에 취업자 수가 최근 3개월째 정부의 일자리 창출 목표(30만명)를 밑돌고 있는 등 악화된 고용사정과도 관련이 있다.

고유가로 교역조건이 악화한 점도 국민의 호주머니 사정을 악화시켰다.

실제로 1분기 실질 국내 총소득(GDI) 성장률은 전기 대비 -2.2%로 2000년 4분기(-2.4%) 이후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최춘신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최근 임금 상승세가 둔화하고 물가도 빠르게 올라가서 실질 임금 상승세는 둔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점도 소득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돼 민간소비는 앞으로 회복되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들도 설비투자를 줄였다.

1분기 설비투자 증가율은 반도체 제조용 기계, 컴퓨터 및 사무용 기기 등 기계류 투자가 부진하면서 전기 대비 -0.1%, 작년 동기 대비 1.7%에 그쳤다.

건설투자도 정부 관련 부처 개편으로 예산 집행이 늦어지면서 건물 및 토목건설이 감소해 전기대비 1.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수출 증가율이 두자릿수를 유지하면서 잘 버텨주고 있는 점은 다행이다.

재화 수출은 전기 대비로 1.1% 감소했지만 작년 동기에 비해 12.8% 증가해 높은 성장세를 이어갔다.

전기 대비로 성장률이 감소한 것은 작년 4분기 7.4%의 높은 성장률을 나타낸 데 따른 기저효과 때문이다.

◇ 성장둔화 뚜렷..금리인하에 무게 = 내수가 크게 부진하면서 경제 성장세도 확연히 꺾이는 모습이다.

최 국장은 "1분기에 기저효과 등을 제외한 작년 동기 대비 성장률은 4.7%"라며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4%대 후반이라고 했을 때 잠재성장률 수준으로는 성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성장 속도나 상승세는 상당히 꺾였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민간연구소들도 "경기가 1.4분기에 기점으로 하강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데 이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새 정부의 경제성장률 목표인 6% 성장은 커녕 4%대 유지도 힘들 거라는 지적도 있다.

한은도 올해 경제성장률이 당초 전망치 4.7%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가 추경 편성 등 경기부양에 `올인'하면서 연일 한은의 금리인하를 재촉하고 있는 가운데 내수부진이 뚜렷하게 확인되면서 한은도 조만간 금리를 내릴 수밖에 없을 거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성태 한은 총재도 이달 10일 금융통화위원회 개최 이후 "경기 상승세가 최근 들어 둔화하고 있는 것 같고 앞으로 경기가 둔화할 가능성이 여러 군데서 보인다"고 밝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놨다.

하지만 최근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선을 위협하고 원.달러 환율도 소비자물가 상승세를 부추기는 양상이어서 금통위가 당장 5월에 금리를 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