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꽃이 아니고 안개는 안개가 아니로다.

깊은 밤 찾아와 날이 밝아 떠나간다.

찾아올 땐 봄날 꿈처럼 잠깐이건만 떠나갈 땐 아침 구름처럼 흔적도 없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시 '화비화(花非花)'에는 뜻을 얻은 뒤 물질의 형상을 지우는 '관조의 철학'이 새겨있다.

백거이의 '화비화(花非花)'를 조형예술로 승화시킨 중견 화가 김홍주씨(63·목원대 교수)와 조각가 정광호씨(49·공주대 영상예술대학원 교수)의 2인전이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주제는 '자연(Natura)'.사물의 뜻을 얻어 형상을 버린 '화비화(花非花)'의 세계를 묘사한 김씨의 회화 작품 21점과 정씨의 구리선 조각 작품 20여점이 출품됐다.

1970년대 초 개념미술을 지향한 S.T그룹 운동에 참여했던 화가 김씨의 작품은 세필로 나뭇잎,지도,산수풍경,꽃 등 다양한 오브제를 '환영'으로 되살려낸 작품.보고 그리는 그림이라기보다는 생각하고 그리는 그림이다.

예전에 비해 빨강 등 원색은 줄고 검은색이나 파스텔 톤을 주로 사용해 재현된 이미지와 실존 사이의 '공명'을 부각시켰다.

조각가 정씨는 구리선을 이어 물병,항아리,정물,거미,물고기 등의 형상을 만든 작품을 내놨다.

그림과 조각의 경계를 넘나들며 회화의 환영과 재료의 물성을 공존시킨 것이 특징.대상이 놓일 배경까지 염두에 두고 작업하기 때문에 평면 회화적인 느낌이 난다.

이옥경 가나아트갤러리 대표는 "회화와 조각의 본질을 고집스럽게 반문하면서 혼을 담아 작품활동을 해온 작가들"이라면서 "이들은 예술의 정체성 탐구에 충실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 달 18일까지.(02)720-102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