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현 <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

정부는 돈을 걷어서 쓰는 조직이다.

기업으로부터 법인세를 걷고 가계로부터 소득세를 걷는다.

그리고 이렇게 걷은 돈을 가지고 공무원의 급여도 지급하고 소득재분배를 하기도 한다.

정부가 안 걷었더라면 민간의 소비나 투자에 쓰였을 돈을 걷어서 대신 쓰는 것이다.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는 바로 이런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정부가 자금을 조달해 사용할수록 민간투자가 위축된다는 지적은 여러 면에서 교훈적이다.

정부 지출에 대한 기회비용을 감안해 재정을 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년에 우리 정부는 경제가 별로 좋지 않았는데도 세금을 더 걷었다.

이에 대해 우선적으로 지정된 용처에 돈을 배분하고서도 4조8000억원가량 돈이 남는다.

그동안 이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27일 정부는 추경 편성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현재 경기상황을 고려할 때 정부의 애초 생각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지하다시피 최근 경기 상황은 매우 부정적이다.

유가는 100달러를 넘은지가 엊그제인데 벌써 110달러대를 돌파해 하늘 모르고 치솟고 있다.

서브프라임의 여파는 아직도 글로벌 금융시장에 경색을 야기하고 있고 중국발(發) 스태그플레이션은 여전히 유효한 시나리오다.

이를 반영하듯 일자리창출이 매우 부진해 지난 3월의 전년동기 대비 일자리 증가폭은 3년 1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러니 정부가 속이 탈만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세계잉여금을 추경예산의 편성을 통해 지출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국가 빚을 갚는 것도 가능하지만 당장 일자리가 부족하고 경제가 어렵고 이로 인해 고통을 받는 국민들을 생각하면 법이 정한 수준까지만 국가 빚을 갚고 나머지는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것이 낫다.

특히 예산의 일부를 실업급여와 비슷한 형태로 사용하는 등 다양한 목적에 사용하면 경기부양 효과와 소득재분배 효과를 동시에 거둔다는 면에서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성장을 촉진하려면 단기와 중ㆍ장기 정책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단기적으로 금리인하를 통한 금융정책,재정의 조기집행이나 추경편성 등을 통한 재정지출확대 정책이 시행되는 동시에 중ㆍ장기적으로 성장을 촉진하는 규제완화와 정부주도의 투자,그리고 투자 및 근로유인을 촉진하기 위한 감세정책 등이 조화롭게 이뤄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일부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방만한 재정집행을 통제하기 위해 개정한 법률을 또 고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와는 달리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있고 국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재정법을 개정할 당시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셈이다.

미리 알아서 재정규모를 알뜰하게 관리하겠다는 새 정부에 대해 과거 정부의 방만한 재정을 통제하려는 취지로 개정된 법을 그냥 적용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더구나 앞으로 추경을 편성하는 경우 이는 적자재정 편성이 아니라 더 걷은 세금을 의미 있게 사용하겠다는 목적이므로 과거와는 상황이 다르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입법부와 행정부,나아가 사법부까지 서로 간에 정책철학과 기조를 공유하면서 조화된 노력을 하는 등 최선을 다해야 경제살리기는 가능하다.

어려운 가운데 무언가 해보겠다는 경제팀의 노력을 일단 받아들이고 노력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준 후 성과 평가를 하고 문제가 있으면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8대 국회에서라도 법 개정과 함께 추경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해 경제살리기에 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바른금융재정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