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 자유기업원 원장 >

1852년 어느날,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 근처 바다.

침몰해가는 영국 해군 소속 버큰헤드호의 갑판에는 400여명의 병사가 미동도 없이 도열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630명 중 3척의 구명보트에 탈 수 있는 건 180명뿐.더 타면 모두가 가라앉아 죽을 것이 뻔했다.다행히 450명은 스스로 죽음을 택해서 180명이라도 살아날 수 있었다.

난파선에나 적용되는 버큰헤드호의 정신을 우리나라에서는 재개발 사업에 적용해야 할 판이다.너무 많은 사람이 지분을 쪼개어 가진 결과 나눠줘야 할 아파트 입주권의 숫자가 지어질 아파트보다 훨씬 더 많아진 것이다.당연히 사업은 침몰의 위기를 맞는다.

모 건설회사가 추진하던 인천 용현ㆍ학익2-1구역 도시개발사업이 그렇다.사업을 시작하던 2006년 말 180여명이던 조합원 수가 지분을 쪼개어댄 결과 최근엔 2000명으로 불어났다.결국 사업은 좌초됐다.재개발이나 뉴타운 사업이 예상되는 지역에서는 어디고 예외 없이 광풍처럼 지분 쪼개기가 성행하고 있다.

정부도 부랴부랴 방지책 마련에 나섰다.최소 면적이 안 되는 주거시설에 대해서는 입주권을 안 주는 방법 등이 도입될 것이다.어떻게든 나눠줘야 할 아파트 입주권의 숫자를 줄이겠다는 것이 대책의 핵심이다.그러나 미봉책에 불과함을 정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사태의 근본 원인은 지분을 쪼갤수록 이익이 된다는 데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재개발지구 내에 대지 50평짜리 집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은 재개발이 완료된 후의 아파트 1채에 대한 입주권을 갖는다.

그런데 똑같이 대지 지분 50평짜리 집이라고 하더라도 10평씩 5개로 지분을 쪼개서 자기가 하나 갖고 나머지를 4명에게 팔아버리면 다섯 명 모두가 아파트 한 채씩에 대한 입주권을 갖게 된다.

물론 50평짜리를 혼자 소유하고 있던 사람에게 배정되는 1채는 10평짜리 소유자에게 배정되는 1채보다 평수가 더 넓을 것이다.

하지만 10평짜리 소유자 5명에게 배정되는 아파트 다섯 개를 모두 합친 것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저마다 지분을 잘게 쪼개서 팔아버리려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해법이 있다.

새 아파트 건설에 기여한 가치와 분배받는 가치가 비례하도록 관리처분계획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파트의 분배를 정확히 대지지분에 비례해서만 하고,철거되는 건물에 대해서는 오히려 철거비만큼의 비용을 부담시키는 평가 방식이 필요하다.

새로운 아파트를 짓기 위해 필요한 것은 토지뿐이다.

넓은 땅을 제공한 사람일수록 새 아파트에 많은 기여를 하는 셈이다.

그러나 건물은 오히려 반대다.

큰 건물일수록,또 새 건물일수록 철거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새 아파트를 짓는 데는 오히려 부담이 된다.

따라서 건물의 가치는 재산가치에서 제외하거나 또는 큰 건물일수록 철거비만큼 평가액에서 빼버리는 것이 옳다.

이렇게 하면 지분 쪼개기를 위해서 다세대주택 등을 지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큰 손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민들이 그런 식의 관리처분계획을 수립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다.

지금처럼 아무리 작은 대지를 가진 사람이라도 입주권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고,다른 조합원들이 그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지분 쪼개기를 막을 방법은 없다.

그것은 재개발이나 뉴타운 개발을 주민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결국 정부 개입을 불러들일 것이다.

기여한 것과 분배받는 몫이 정확히 비례하는 사회는 이상향에 불과한 것일까.

그래도 희망을 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