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운하를 계획하고 완공한 레셉스가 파나마운하의 첫 삽을 뜬 것은 1879년이었다.

수에즈의 성공으로 프랑스의 영웅이 된 그는 당초 추정된 공사기간과 비용의 절반으로 운하를 완성시키겠다고 장담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파나마사업은 수에즈의 절반도 안 되는 겨우 64㎞의 뱃길을 뚫는 공사였음에도 불구하고 9년 동안 2만명의 희생자만 남긴 채 파산한다.

레셉스를 믿고 모든 재산을 투자한 수많은 프랑스 국민 또한 알거지가 됐다.

운하는 나중에 미국에 의해 완공된다.

실패의 이유는 간단하다.

수에즈운하는 사막을 파내 물길만 내면 되는 일이었는 데 반해 파나마는 바위 산과 열대 우림으로 뒤덮였고 풍토병까지 만연한 곳이었다.

당시 레피네라는 기술자가 각각 태평양과 대서양으로 흐르는 남미 대륙쪽의 두 강을 잇는 수로를 만들어 우회하는 방법을 제시했으나 레셉스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미 수에즈의 성공에 도취돼 자만과 독선의 함정에 빠졌던 것이었다.

그가 토목이나 수리학(水理學)에는 문외한인 외교관 출신이었던 것과도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모를 일이다.

여전히 양 극단의 찬반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대운하 구상은 어떨까.

파나마의 실패와 오버랩되는 것은 물론 지나친 기우일 수 있다.

우리 산악지형 조건이나 난공사쯤이야 현대의 첨단공법에다 세계 최고의 마천루인 버즈 두바이를 쌓아올린 우리 기술력이고 보면 별 문제도 아닐 수 있다.

운하의 본질은 '물류의 경제성'에 있지만,우리 대운하의 비전은 그 이상이다.

내륙도시의 관광을 진흥하고 국토내 수계를 연결해 수자원의 활용도를 높이면서,국토개조로 나라의 미래를 바꿀 성장동력을 확보하자는 등의 창조적(?) 개념에 더 무게가 두어지고 있으니 파나마와는 차원 또한 다르다.

그럼에도 불안하다.

'신뢰'의 문제를 안고 있는 까닭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참모그룹이 10년에 걸쳐 연구하고 준비했다는 대운하의 밑그림만 해도 기초적인 문제부터 헷갈리고 있다.

대운하 구상을 만든 이들은 '한강과 낙동강의 교량 136개 중 11개 또는 25개만 고치면 5000t급 배가 다닐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건설업계 실측 결과는 선박규모를 2500t급으로 낮춰도 68개의 교량을 허물거나 고쳐야 하는 것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운하 구상의 뼈대부터 달라지는 얘기다.

강바닥을 얼마나 많이 자주 준설해야 할지,제방은 얼마나 쌓아야 할지,수많은 댐과 보는 또 어떻게 할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무엇보다 국민은 대운하의 당위성을 정작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운하추진론자들은 산업파급 효과와 수십만개의 일자리 창출,물류 개선,대기오염 감축,관광개발 등으로 비용대비 편익이 2.3배에 이른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고 있지만 국민의 피부에 와닿지 않고 있다.

그래도 파나마운하는 남미대륙을 돌아가는 1만4800㎞의 뱃길을 64㎞로 줄여 얻을 수 있는 막대한 이득이 눈앞에 있었다.

한반도대운하는 한번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국민에게 삶이 얼마나 좋아지고 어떤 경제적 이득이 있는지 손에 잡히는 비전으로 확신과 믿음을 심어주지 못한다면 그저 무모한 토목공사일 뿐이다.

대운하를 왜 해야 하는지 보다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납득시켜야 할 이유다.

추창근 논설실장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