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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앙칼진'과 '쩨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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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켜 생각하건대 나의 삶이란 공명정대한 법에 대해,지극히 온당하며 인간의 도리를 일깨운다는 관습과 예절에 대하여 던지는 질문에 다름 아니었어요. 양반은 양반답고 아전은 아전다우며 기생은 기생다워야 한다는 규범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겁니다. 그 다움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요.'

    김탁환 작 '나,황진이'의 한 대목이다. 황진이의 물음은 이렇게 이어진다. '나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내밖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어찌 그것을 내 삶의 원칙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우연의 일치인지 최근 국내 TV드라마엔 "나답다는 게 뭔데?"라는 대사가 자주 나온다.

    '답다'는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정해진 틀에 가둔다. '여자답다' '남자답다'는 특히 더하다. 수식하는 말이 다른 것만 봐도 그렇다.

    '억척맞다''극성맞다'가 남자에게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같은 특성을 지닐 때 남자에게 붙는 말은‘적극적이다’‘열심이다’등 이다. 물론 여자에게 '쩨쩨하다' '좀스럽다'고 하는 일도 없다.

    여자는 적극적이면 곤란하고 남자는 쩨쩨하면 안된다는 식의 선입견이 들어있는 셈이다. 국립국어원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조사한 대중매체(신문 방송 인터넷)의 성차별적 언어(5087개)를 보면 특정 성을 비하한 표현은 물론 ‘앙칼진’처럼 고정관념적 속성을 강조한 것이 많다.

    남성공무원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곳간 열쇠를 바람 난 며느리에게 맡긴 꼴’이라는 표현도 있다. 조사결과에 상관없이 '치마만 입었지 남자나 다름없다'는 칭찬, '여자가 못하는 말이 없다'는 욕인 게 현실이다.

    성별 고정관념을 확대재생산하는 이런 말들은 남녀 모두를‘답다’에 묶는다.

    관행을 앞세워 "그런 것도 차별인줄 몰랐다"거나 "다들 그러는데 뭘"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남녀 차별적 의식과 행동은 달라지기 어렵다. '홍길동씨는 아내 아이들과 함께'가 아닌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식의 문장이 계속된다면 딸은 물론 아들의 미래도 고단할 게 분명하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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