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리즈로 10개의 펀드가 나오면 7개 이상은 버려지는 펀드라고 보면 됩니다.

따라서 시리즈 펀드를 고를 때는 출시 이후 바로 가입하는 것보다 상황을 지켜본 뒤 설정액이 많이 증가한 것을 고르는 게 좋은 펀드에 가입할 수 있는 한 방법입니다.

이런 펀드들이 상대적으로 수익률도 높게 나옵니다."


정윤식 ING자산운용 CIO(최고투자책임자)는 현재 관여하고 있는 펀드 규모가 12조원에 달한다.

이젠 직접 펀드를 운용하는 위치에서 벗어났지만,1991년 대한투자신탁의 아시아투자 담당 운용역으로 업계에 발을 들여 놓은 이후 펀드를 만들고 운용한 세월은 20년 가까이 된다.

증시가 급등한 2005년과 횡보한 2006년에도 그가 설정한 중소형주펀드와 배당주펀드는 당시로선 많은 자금인 각각 800억원,4000억원을 모아 같은 유형의 다른 펀드보다 연 15% 이상씩 안정적인 초과 수익률을 냈다.

펀드 전문가인 그가 보는 좋은 펀드란 어떤 것일까.

그는 펀드수익률이 들쭉날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펀드 선택의 최우선 고려사항으로 꼽았다.

"'장기 투자,장기 투자'하는데 투자하는 동안 펀드 수익률의 부침이 심하면 투자자는 흔들리게 마련이고,결국 이런 펀드가 장기 투자 문화를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그가 바라보는 장기 투자의 기간은 얼마일까.

그는 "장기 투자라면 적어도 3년 이상은 적립식이든,거치식이든 꾸준히 묻어 놓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 사이클이 최소 3년마다 변하기 때문에 그 전 수익률이 시장보다 높든,낮든 의미가 크지 않다는 얘기다.

그는 목표수익률을 정해 놓고,수익률에 도달하면 펀드를 환매하는 것도 좋은 투자방법은 아니라고 했다.

펀드 가입 뒤 3~6개월 후에는 환매수수료가 없어지긴 하지만,자주 환매를 한다면 일반 주식 투자와 다를 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렇게 해서 이익을 낼 수 있겠지만,반대로 예상과 달리 시장 상황이 전개되면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내 펀드 시장에서 장기 투자 문화는 왜 자리 잡기 힘들까.

이에 대해 그는 국내 투자자의 조급한 마음도 원인이지만,금융사들의 펀드 판매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선취 수수료 등 펀드 판매 수수료가 높아지면 일부 펀드 판매처에서 환매를 종용하는 분위기가 생깁니다.

펀드를 판매하는 입장에선 펀드 운용과 무관하게 수수료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죠.이 같은 악순환 구조에 투자자의 조급함이 더해지면 펀드의 생명을 단축시키고 장기 투자 문화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요컨대 일부 증권사 영업직원이 수수료 수익을 올리기 위해 고객에게 단타 매매를 권하는 것과 비슷한 구조가 펀드 판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한 좋은 펀드를 고르는 두 번째 방법은 '당연하게도' 높은 수익률이다.

하지만 기준은 조금 다르다.

단지 높은 수익률을 내고 있는 펀드가 아닌 '비슷한 종류의 펀드 가운데 높은 수익률'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다소 어렵게 말하면 벤치마크 대비 수익률이 관건이라는 얘기다.

"중소형주 펀드 수익률을 코스피지수 상승률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브라질펀드 수익률을 중국 증시와 비교하는 것도 마찬가지죠.벤치마크하는 지수가 없다면 가입한 펀드와 비슷한 다른 펀드와 비교 대상이 돼야 합니다.

벤치마크와 비교해서 수익률이 높다면 좋은 펀드입니다.

다만 유의할 점은 이보다 월등히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펀드는 그리 좋은 펀드가 아니라는 겁니다.

월등히 높은 수익률을 유지한 펀드는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투자하고 있는 대상의 수익률보다 소폭 높은 수익률을 꾸준히 유지하는 펀드냐가 중요합니다.

"

마지막으로 좋은 펀드란 큰 안목에서 시장을 바라보고,그 원칙을 지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펀드가 한 투자처에 '몰빵'하거나 시류에 휩쓸려 '손절매'까지 하는 정도가 되면,개인투자와 다를 바 없다는 판단에서다.

"개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주식 투자 강연에서도 주식 얘기는 5분만 하고 그만둡니다.

나머지는 국제 정세에 대해 얘기를 합니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3년 이상을 묻어둘 투자처도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자원전쟁'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중국과 인도의 경제성장으로 상품가격이 앞으로도 급등할 것이라 예상하고 대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실제로 상품과 자원개발 관련 상품에 투자하는 펀드를 준비 중이다.

천연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가 '가격 급등의 위험을 헤지하려면 펀드를 만들어 상품에 투자하고,그에 대한 이익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앞으로 직접 투자보다는 펀드 등 간접 투자가 늘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이 과정에서 좋은 펀드를 고르는 것이 재테크에서 가장 쉽게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도 했다.

"작년 코스피지수가 30% 상승했지만 개인투자자 수익률은 평균 9% 정도였습니다.

펀드는 최소한 시장수익률은 따라 갑니다.

에너지 관련 기업이 유망하다고 하지만 이들 중 누가 성공할지 누가 먼저 알겠습니까.

증시 종목을 찾는 안목보다 펀드 고르는 안목을 기르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봅니다."

글=김재후/사진=양윤모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