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저녁 7시, 일본의 후생노동성과 농림수산성이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 쇠고기 덮밥업체 창고에 보관돼 있던 미국산 쇠고기에서 특정위험물질(SRM)인 등뼈가 발견됐다는 발표였다.

소식을 접한 순간 '일본도 난리 나겠군'이란 생각이 스쳤다.

특정위험물질이 무엇인가.

광우병 병원체가 들어 있기 쉬운 소의 뇌나 척수 같은 것 아닌가.

그래서 수입이 금지된 부위가 버젓이 수입돼 소비자 입에 들어가기 직전에 발견됐으니 앞으로 사태는 안 봐도 뻔했다.

미국산 쇠고기에서 특정위험물질이 아니라 단순 뼈조각이 나왔어도 발칵 뒤집혔던 한국의 모습이 기자 머릿속엔 생생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일본은 조용했다.

시민단체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중단' 요구도, 농민단체 시위도, 그 흔한 야당의 성명서 한 줄도 없었다.

너무나 의외였다.

요즘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난리다.

중.고생들까지 가세한 대규모 촛불시위가 광화문에서 벌어지고, 야당은 연일 정부를 공격하며 미국과 쇠고기 협상을 다시 하라고 소리친다.

일부 TV에선 과학적 근거도 희박한 주장으로 광우병 공포를 조성하고, 난데없이 연예인들도 '미국산 쇠고기'를 성토한다.

인터넷엔 '과자나 오뎅 국물을 먹어도 광우병에 걸린다'는 등의 괴담이 창궐하고 있다.

수입식품 안전은 한·일 양국 국민 모두에게 똑같이 민감한 문제인데도 일본 사람들은 왜 조용한 걸까.

일본인이 광우병에 유독 강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걸까 아니면 식품안전에 우리보다 무뎌서일까.

아니다.

일본인도 우리와 비슷한 유전자를 갖고 있고, 먹거리 안전에 관한 한 둘째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까탈스런 국민이다.

유통기한을 넘긴 식품을 판 회사를 기어코 망하게 만드는 나라가 일본이다.

결정적 차이는 일본 국민은 문제 식품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는 게 더 실리적인지 알고 있다는 점이다.

올초 중국산 수입 냉동만두에서 농약이 발견됐던 '농약 만두' 사건 때도 그랬다.

일본인들은 시위 대신 중국산 냉동만두를 조용히 안 사먹었을 뿐이다.

관련업체들이 도산 위기에 몰리자 식품안전 관리를 스스로 강화하고 나선 건 중국 정부였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지도,중국 대사관 앞에 가서 항의 한마디 안 했지만 실속은 다 챙겼다.

수입 식품 문제엔 상대국이 있다.

그 나라와는 해당 식품만이 아니라 여러 복잡한 이해가 얽혀있다는 건 상식이다.

넓은 의미에선 외교문제다.

외교엔 냉정하고 차분한 대응이 필수다.

흥분해 감정적으로 대응했다간 오히려 손해보기 십상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이 잘못됐다면 국회에서 따지면 된다.

거기서 바로잡을 게 있다면 바로잡도록 하면 된다.

시민들이 촛불 들고 거리로 나가 해결할 일은 아니다.

그걸 갖고 출범한 지 100일도 안 된 대통령을 탄핵하자고 서명운동까지 벌이는 정치 쇼는 오버도 한참 오버다.

베이징올림픽 성화봉송 때 일부 중국인들의 '오버'에 세계 여론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되새겨 볼 일이다.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