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고 치는 고스톱." 참여정부가 2004년부터 공공기관장에 대해 공개모집 원칙을 세우면서 공모제가 활성화됐지만 '낙하산 인사' 시비가 줄기는커녕 더 시끄럽고 소모적인 분쟁만 낳는 제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공기업 최고경영자(CEO) 임명 과정에서 정치적인 배려를 차단하기 위해 공모제를 도입한 것이지만 운영 과정에서 '낙하산 인사'를 위한 명분쌓기용 통로로 활용된 탓이다.


기관장 공개 모집을 규정한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 시행(2004년 4월1일)을 계기로 공공기관장의 공모제 원칙이 정립됐다.

그 뒤 이 법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로 흡수 통합되면서 30조 3항에 '임원추천위원회는 임원 후보자를 공개 모집할 수 있다'는 조항으로 남아 참여정부의 공기업 인사 원칙으로 자리잡게 됐다.

하지만 공모제 운용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 및 실효성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제도 자체가 허술

대부분의 공기업이 공모를 실시하면서도 CEO 직무 수행에 필요한 요건을 체계적 포괄적으로 정해놓지도,제시하지도 않고 있다.


막연하게 '관련 분야의 민간 전문가를 우선으로 한다'거나 '관련 분야의 다양한 경험과 학식을 쌓은 분' 정도가 고작이어서 누굴 뽑아도 제대로 된 인사였는지 입증할 수도,검증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공모제 절차를 거쳐 뽑힌 CEO라도 '내부 인사가 아니다'는 이유로 무조건 낙하산 시비를 걸고 나오는 공기업 노동조합의 공세에 취약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장 선임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임원추천위원회를 두고 있지만 일회성 태스크포스 형태의 조직이다 보니 사장 선임의 결과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지난해 3월 A은행장은 추천위원들의 만장일치로 단일 후보에 뽑혔다.

나중에 자녀의 병역회피 문제 등 자격 논란이 일었지만 그를 추천한 위원들은 모두 입을 닫았다.

결국 청와대가 '문제 없다'고 한 뒤에야 선임 절차를 마칠 수 있었다.

또한 적극적인 모집 활동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자발적 응모자만을 마냥 기다려야 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공공기관운영법에 '외부기관을 활용할 수 있다'고 돼 있지만 의무조항이 아니어서 적극적인 모집활동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기본적인 '배수 요건'을 채우지 못해 공모가 공전되거나 별도 추천이 개입돼 지원하지도 않은 엉뚱한 인사가 최종 결정되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행태가 더 큰 문제

제도적인 허점도 문제지만 임명 과정에 간여하는 관료나 정치인들의 행태가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추천위원회에 민간위원이 과반수가 되도록 제도는 만들었지만 사실상 정부 측 영향권에 있는 인사가 버젓이 민간위원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B금융공기업 CEO 공모에서 시장의 평가가 좋은 민간전문가 X씨와 모피아(옛 재무부와 재정경제부 관료들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말)의 지원사격을 받은 Y씨가 경합하다 결국 Y씨가 낙점을 받은 것이 대표적 사례.당시 추천위원 7명 중 민간위원이 4명으로 다수였지만 그 중 한 명이 사실상 모피아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또 다른 금융공기업 인사였던 것이다.

그래서 미리부터 "게임은 끝났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이처럼 추천위 민간위원을 사실상 정부의 영향권에 있거나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소수 명망가들이 돌아가면서 맡고 있다. 이 때문에 관료나 정치권의 입김이나 영향력을 차단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정부위원으로 관련 부처 공무원이 추천위에 들어가서 청와대와 정부 부처가 교감하고 있는 내정자를 정해 두고 '위에서 누구를 찍기로 했으니 그리 알라'는 말을 추천위원들에게 흘려서 다른 선택을 못하도록 간섭하는 경우까지 있다.

아울러 최종 임명권자가 추천위원회의 결과를 승인하지 않고 반려해 공모제 취지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경우가 많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하는 수 없이 재심의 또는 재공모를 하게 되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민간 전문가들 사이에 "지원해봐야 안 된다" "들러리는 싫다"는 인식이 퍼져 결국은 정부가 낙점한 인사만 지원하는 악순환이 생긴다는 얘기다.

차기현/박준동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