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경리 선생 영전에


땅이 하늘인 나라입니다

땅이 역사이고 땅이 겨레인 나라입니다

산 높고 물 맑으며

풀과 나무,꽃과 새,물고기와 뭇짐승 더불어

사람이 흙을 일구며 살아온

참으로 아름답고 참으로 사랑스러운 나라입니다

박경리 선생님

선생님은 나라 잃고

말과 글도 빼앗기던 일제 강점기에

붓 한 자루 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중략…)

선생님은 시대가 쏟아 붓는

노여움도 아픔도 한도

스스로 드넓은 '토지'의 품으로 안아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붓을 잡으신

시 '옛날의 그 집'에 있었다는

늑대,여우,까치독사,하이에나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그 말씀이 천둥소리만큼이나

크게 가슴을 때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쓰리고 아픈 세월이면

'아아 편안하다'는 한 마디를 남기셨겠습니까

선생님이 편안한 길이라 떠나시니

달려오던 산이 돌아서고

뻗어가던 강이 걸음을 멈춥니다

산이 있던 자리 강이 흐르던 땅이

오늘 적막강산으로 울고 있습니다

박경리 선생님!

이제 오르시는 새 하늘 새 땅에서도

더 큰 붓으로 더 높은 산 깊은 강 지으시어

따르는 이들의 빈 가슴 채워주소서

부디 사랑의 손길 한 번 더 잡아주소서.


이천팔년 오월 팔일 후학 이근배 울며 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