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땀 한땀 꼼꼼히 익혀 100년 名品 만들겁니다"

"수제화가 생산되는 과정을 보면 가끔 소설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무질서한 생각의 조각들을 글로 엮을 때 한 편의 소설이 탄생하듯이 수제화도 어지럽게 널린 재료들을 교묘하게 조합해야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거든요."

당초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이동주씨(27)가 송림제화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하반기.대학 졸업반으로 학교수업이 거의 없었던 이씨에게 "용돈을 벌 겸 아르바이트나 해보라"고 아버지가 권유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이씨는 소설가의 꿈을 펼치느냐,출판사에 들어가느냐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삼국지 초한지 광개토대왕 등 역사소설에 매료돼 문예창작과에 들어간 이씨의 마음 속에 '신발쟁이'로서의 길은 자리잡고 있지 않았다.

더구나 그저 '복잡한 머리나 식혀보자'는 생각에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그의 직장으로 이어지게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사실 가업에 대해선 무관심했어요.

지난해 초 정식 입사하면서 송림제화의 수제화를 처음 신어봤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씨의 생각은 바뀌어 갔다.

직접 부딪히면서 느끼게 된 송림제화의 높은 명성은 이씨에게 자부심을 줬고,"젊은 친구 덕분에 편한 신발을 신게 됐네"라며 고마워 하는 손님들은 이씨의 힘을 북돋워줬다.

만만치 않은 신발제작 과정은 그에게 도전 의식을 심어줬다.

양질의 소가죽을 구입하는 것에서부터 밑창을 제작하고,그 위에 피혁을 입혀 한땀 한땀 꿰매는 신발제작 과정을 하나씩 익혀 나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씨는 요즘엔 신발업계의 최신 트렌드를 살펴본 뒤 아버지와 기술자 '형님들'에게 새로운 디자인을 제안하기도 한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이씨는 "직접 송림제화의 수제화를 만들고 신어보니 '이렇게 편한 신발을 왜 진작 안 신었지'하는 후회가 들 정도였다"며 "이제는 송림제화의 최고 팬이 됐다"고 말했다.

한때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스물일곱살 신발쟁이가 꿈꾸는 미래는 어떤 것일까.

"제가 현재 아버지 연세가 될 때 즈음이면 송림제화도 탄생 100주년을 맞게 됩니다.

수제화 업계의 '전설'이 제 시대에 태어나는 셈이죠.그때까지 송림제화가 쓰러지지 않도록,아니 지금보다 더욱 번성시키는 게 제게 주어진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저도 제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회사를 물려줄 수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