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소에서는 환자가 의사와 간호원에게 마음으로부터 감사하면서 앞을 다투어 죽어간다.

그리고 어떤 환자나 요양소가 규정한 방법으로 죽는다.

그것이 환영을 받기 때문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에 나오는 얘기다.

누구를 막론하고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언급하기조차 꺼린다.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들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는 더욱 생에 대한 애착을 드러낸다.

기사회생의 가망이 영 없는데도 말이다.

정작 환자 본인에게는 품위있게 죽을 권리마저도 박탈돼 있는 게 현실이다.

최근 미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슬로 메디신(slow medicine)'운동,즉 '느림의 의학'은 바로 이 품위있는 죽음의 권리를 갖게 해주자는 것이다.

이 운동의 주창자는 다트머스 메디컬대학의 매컬러프 교수인데,그는 기력약화로 스스로를 가눌 수 없는 노인들에게 인위적인 치료를 강요하기보다는 안락하게 생을 마감할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단지 죽음을 미루는 치료거부권인 셈이다.

암이나 치매 등 여러 가지 질병을 동시에 앓는 고령의 노인들 경우에는 치료 자체가 고역이다.

마취,수술,방사선투시,화학요법이 계속해서 진행되는데 이런 집중적인 치료가 오히려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킨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가족에게 끼치는 가계부담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론 반론도 만만찮다.

환자가 겪는 고통의 기준을 정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자칫 인명경시 풍조로 흐른다면 여간 큰 일이 아니어서 쉽게 판단할 문제는 결코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Well-being) 못지않게,편안하게 생을 마감하는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우리나라에도 가치있는 죽음을 연구하는 '한국죽음학회'가 창설됐다.

"훌륭하게 살아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언제라도 죽을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한 '모리의 마지막 수업' 글귀가 생각난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