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7일 금융공기업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재신임 여부를 발표하면서 상근 감사들에 대한 대대적 물갈이를 공식화하자 공공기관 감사들이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사실 공기업 감사의 경우 해당 기관의 '넘버 2' 직책이지만 고액 연봉에 비해 업무 부담이 작고 전문성에 대한 요구 수준도 떨어져 정치적 배려 차원에서 임명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정부가 새로운 잣대를 들이대면 상당수의 감사들이 자리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가 7일 발표한 금융공기업 경영진 재신임 결과에서 살아남은 감사는 경남은행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2곳에 불과했다.

경남은행은 임기를 시작한 지 1년을 갓 넘겼고 캠코는 작년 10월 선임됐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남은행과 비슷한 조건의 광주은행 감사가 재신임을 받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임기를 얼마나 채웠는지가 생존의 열쇠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출신 성분이 큰 변수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일단 감사원 출신들이 다 살았다.

경남은행과 캠코가 그런 경우다.

전문성을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지난 3월 임명된 산업은행 감사도 감사원 출신이었다.

반면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원 국세청 예금보험공사 출신들은 관료 배제 원칙을 그대로 적용받아 재신임을 받지 못했다.

지난달 임기 만료로 물러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감사의 경우도 모두 재경부 출신이었다.

모피아(재무부 및 재경부 출신 관료들을 비꼬는 표현) 퇴조 현상이 감사 인사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참여정부 당시 대거 등용된 부산지역 출신 감사와 '盧코드 인사'들의 물갈이도 눈에 띈다.

이번에 교체 결정이 내려진 서울보증보험과 일찌감치 사표를 제출,공모절차가 진행 중인 예금보험공사 감사 모두 부산상고 출신 인사들이다.

반면 정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등은 법적으로 보장된 임기를 지키겠다며 사표 제출을 거부,금융위원회의 향후 대응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신용보증기금 박철용 감사의 경우 부산상고 출신으로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감사로 임명됐다.

지난해 8월 임명된 기술보증기금의 남수현 감사도 정부의 일괄사표 제출 요구가 부당하다며 이를 거부한 소신파다.

남 감사는 참여정부에서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임기를 2년가량 남겨둔 주택금융공사 이태섭 감사 역시 부산상고 출신으로 이번에 사표를 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가 대거 공석이 된 감사 자리에 어떠한 인선기준을 적용할지도 금융권의 관심이다.

감사의 경우 기관장의 독단 경영을 견제하고 기관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감시가 소홀하다는 이유로 자칫 정권 창출에 대한 기여도를 따져 나눠먹기식으로 흐를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공기업 감사도 CEO에 못지않은 중요한 자리인 만큼 주요 공기업 감사는 철저히 전문성을 가려 임명한다는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노조도 정부의 향후 인사를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업은행 노조는 "정부가 어떤 기준과 원칙을 적용했는지 명백히 밝혀야 한다"면서 "현 정권의 보은 인사로 귀결시키려 한다면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