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서울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던 때였을 것이다.

곳곳에서 외국손님 맞이 준비에 바쁘던 시절,신문에 이런 제목이 떴다.

"머리만 깎겠습니다!" 내용인즉 이용사들이 모여 당시 사회적 문제였던 퇴폐영업을 하지 않겠다는,이른바 자정(自淨) 결의대회를 하는 장면 사진에 붙인 것이었다.

대회 참석자 중 어느 정도가 이 결의를 실천했는지는 알 길 없다.

그래도 사진을 보던 순간엔 착잡한 한편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이런 대중의 마음을 겨냥하는 걸까.

우리 사회에선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관련인사나 단체가 나서서 '다신 그러지 않겠다'며 자율정화 선언이라는 걸 한다.

잘못됐으니 알아서 스스로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고치겠다는 사안과 그것을 선언하는 사람에 구역 따윈 없어 보인다.

방송국 관계자의 TV드라마 흡연장면 금지 선언부터 제약업체와 의사의 의약품 납품 비리 축소 선언,지방자치단체의 바가지요금 근절 선언에 청렴도 조사 꼴찌 지자체의 부패 척결 선언까지 실로 다양하기 짝이 없다.

이번엔 케이블TV방송협회 산하 PP(Program Provider,방송채널사용사업자)협의회가 최근 지탄받는 선정성과 관련,프로그램 자정을 선언했다.

청소년 시청 시간대에 낯뜨거운 프로그램을 내보낸 PP에 대한 시정 권고 등 선정성 경쟁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고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케이블TV가 닻을 올린 건 1996년.뉴미디어의 총아로 창의적 콘텐츠를 개발,국내 문화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던 전망과 달리 출범 13년째인 지금까지 공중파TV 프로그램 및 수입물에 의존하는 상태다.

그리곤 시청률을 올린다며 벌건 대낮에 어른도 보기 민망한 자극적 프로그램을 내보낸다.

전시행사로서 선언이나 결의를 거듭하면 양치기소년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현실에선 진짜 늑대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디지털 시대에 비밀은 없고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자정 선언이 또 다시 '역시나'로 여겨지는 한 케이블TV의 미래는 없다.

부패 금지와 바가지 금지 선언도 마찬가지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