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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에세이] 우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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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 원 < 프로바둑기사·방송인 myung0710@naver.com >

    1999년 생일날.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았는데,그 중 유독 눈에 띄는 우생선(우리 생애 최고의 선물)이 있었다.

    아직도 그때의 감동이 생생하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98년 봄 프로기사가 된 나는 고교시절 내내 프로바둑대회 시합이 있거나 연구회 활동이 있는 날이면 학교가 아닌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으로 향했다.

    당시 수원에 살았는데,홍익동에 가기 위에서는 지하철이 최선이었다.

    그래도 집에서 한국기원까지는 편도 1시간50분 정도 걸렸다.

    프로기사들의 경우 승부사로서의 호흡과 체력 안배를 위해 한국기원 인근에서 사는 경우가 많았는데,이분들에게는 내 집이 아주 멀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한국기원에서 여럿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사람이 내게 물었다.

    "집에서 여기 오는 동안 지하철에서 주로 뭐해? 졸고 또 졸아도 끝이 없겠다."

    요즘은 날 알아보는 분들이 있어도 꾸벅꾸벅 조는 경우가 있지만 당시에는 졸지 않는 체질이어서 "신문이나 책 읽기,그림 그리기,앞에 앉은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지 상상하기를 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중에 '이런 대답을 했던가'라고 생각할 만큼 가벼운 대답이 하나 더 있었는데,"지하철 정액권을 마지막에 50원 남기기 위해 계산을 해.그렇게 조금 남겨서 수원~서울 구간에 사용하면 은근히 기분 좋아"였다.

    학생정액권을 사용했던 당시에는 1만원짜리를 사면 1만2000원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정액권 끝전 사용 때는 남은 금액에 상관없이 어떤 거리도 갈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절약하고 숫자놀이를 좋아했던 나는 그런 계산을 즐겼던 것이다.

    이런 대화가 오고간 후 시간이 흘러 해가 바뀌면서 내 생일이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생일을 축하해 주었고 선물도 많았는데 유독 특이한 게 하나 있었다.

    바로 '끄트머리 요금만 남은 지하철 정액권 모음'이었다.

    와아! 작지만 가장 눈에 띄는 감동적인 선물이었다.

    가볍게 나눈 이야기들,스쳐 지날 수 있는 대화를 기억해 두었다가 선물한 것이었다.

    여러 장의 정액권 선물을 주기 위해 몇 달을 준비했을 지인의 정성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살며,그들에 대해 얼마나 많을 것을 알고 기억할까.

    그 후 소중한 사람들이 말하는 것,생각하는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받은 감동을 조금이라도 나눠주고 싶어서….우리 생의 끄트머리는 누구에게 어떻게 선물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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