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도 기쁨도 벗어버릴 수 없는/ 등짐의 무게 그 깊은 곳에 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며/ 오늘도 달팽이는 평온한 속도로/ 제 생을 옮긴다.'

도종환씨의 시 '달팽이'는 숨가쁘게 앞만 보고 달려 온 현대인들에게 '여유의 미학'을 잘 변주해준다.

조각가 이규민씨(53.서울교육대 교수)의 달팽이 작품에도 자연의 순리와 해맑은 동심이 녹아있다.

지난 90년대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이씨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잠시 여유를 가지며 자연의 섭리를 따라보자는 의도에서 달팽이전(21~27일.인사아트센터)을 마련한다.

'꿈꾸는 달팽이'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파란 하늘과 구름을 수놓은 '달팽이 집'을 비롯해 '환경 지킴이 달팽이' '엄마와 아기달팽이' '부부 달팽이' '연인 달팽이' 등 2m~4m짜리 작품 18점이 출품된다.

이씨는 나무가지나 잎에 매달린 달팽이에서 조형예술을 뽑아낸다.

색채는 노랑 파랑 빨강 등 원색을 사용해 알록달록하지만 그 속에 자연의 이치와 동심이 다 들어 있다.

이른바 '느림의 미학'이 여기에서 나온다.

달팽이 모양을 점토로 빚은 후 유리섬유강화 플라스틱(FRP)로 만들어 그 위에 아크릴 물감과 자동차용 도료로 핑크빛 하트와 파란 하늘을 그려 넣었다.

매끈한 질감에선 드로잉처럼 세련된 율동감이 느껴진다.

무위자연의 리듬감에다 동심을 담아묘사했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이다.

미술평론가 오광수씨는 이씨의 조각품에 대해 "작은 생명체인 달팽이를 통해 동심의 세계로 회귀하려는 인간의 염원을 형상화했다.

달팽이 조각은 현대의 문명과 그 속에 사는 인간에게 무언가 절실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평했다.

홍익대와 파리 소르본 대학원을 졸업한 이씨는 1993년 프랑스 도빌국제미술대상전에서 조각 부문 1등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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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