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누상동에 사는 김예진씨(가명.30)는 결혼을 앞두고 예식 날짜가 다른 청첩장을 2개 만들었다.

근로자 서민용 전세자금을 대출받기 위해서였다.

결혼한 무주택 세대주에게 최대 6000만원까지 연이율 4.5~5.5%의 싼 이자로 전세금을 빌려주는 근로자 서민 전세자금은 예비 신혼부부도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1개월 안에 결혼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한 달 안에 결혼한다는 것을 증빙하기 위해 거짓으로 청첩장을 만든 것이다.

청첩장 제작업체는 근로자 서민 전세자금을 대출받는 서류용으로 내기 위해 가짜 청첩장을 만드는 신혼부부가 많다고 밝혔다.

신부 김씨는 결혼 전에 혼인신고도 먼저해야 했다.

대출을 받은 뒤 1개월 안에 부부가 함께 있는 주민등록등본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신혼부부에게 전세자금을 지원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대출 조건이 결혼 일정과 차이가 있다"며 "결혼을 거짓말로 시작하게 돼 기분이 찜찜하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근로자 서민 전세자금 대출요건이 현실과 맞지 않아 신혼부부가 전세자금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결혼을 한 달 남겨둔 예비 신혼부부에게만 대출을 허용하고 있어 미리 전셋집을 구해놓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혼부부가 거주할 만한 전세매물이 귀한 탓에 적어도 결혼 두세 달 전부터 전셋집을 구해놓는 것이 추세인 점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떨어지는 요건이다.

전세대출 상품을 파는 시중 은행들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주택기금을 관리하는 국토해양부가 자격요건을 정해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토부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주택기금과 관계자는 "신혼부부들이 통상 1개월 전에 전세계약을 하고 있어 기준으로 삼은 것"이라며 "아직까지 개선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부동산업계는 국토부가 전세시장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한다.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114 김규정 차장은 "신혼집은 남편이나 신부가 먼저 입주해서 살기도 하기 때문에 결혼식 몇 달 전부터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며 "더구나 요즘에는 전셋값도 크게 오르고 있어 전셋집을 먼저 구해놓으려는 수요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부동산114에 따르면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는 1억원 이하 서울지역 아파트 전셋값은 연초 대비 3.45% 올랐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 전셋값은 1.36% 상승했다.

더구나 강북 노원 도봉구 등 비교적 저렴한 전셋집이 몰려 있는 강북지역 상승률은 4.34%에 이른다.

박상언 유앤알컨설팅 대표는 "신혼부부용 아파트까지 특별 공급하는 마당에 근로자 서민 전세자금 대출조건을 결혼 전 2,3개월로 완화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