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90여개 공기업을 '공모제 활성화 기업'으로 지정해 민간 전문가를 적극 영입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사상 최대의 최고경영자(CEO) 시장이 열리게 됐다.

민간 전문가들이 대거 공기업에 진입하게 되면 그 자리를 다른 경영자들이 채우면서 CEO급 고위 경영자들의 연쇄 이동이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헤드헌팅 회사에는 벌써부터 공기업 CEO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경영자들의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민간 전문가의 수혈을 통해 공기업의 구태의연한 경영을 쇄신하고 새로운 경영기법을 도입하려는 것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유능한 경영자의 발탁은 의욕만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헤드헌팅회사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주요 공기업 CEO의 추천과정에 많이 참여해 봤는데 선발과정이나 결과를 납득하기 어려울 때가 적지 않았다.

따라서 다음의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정부의 발표는 '희망사항'에 그칠 수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추천위원회 구성이다.

지금까지 추천위원회는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짜여졌거나,아예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들로 급조됐다.

이 때문에 위원회가 외부 요청이나 압력에 쉽게 영향을 받았고 '거수기'라는 비판을 들어왔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추천위원회를 회사 상황을 잘 알고 인재 선발의 경험과 판단력을 갖춘 중립적 인물로 구성해야 한다.

두 번째는 평가방법과 기준이다.

추천위원회는 대개 회사가 만들어준 평가방법이나 기준대로 평가한다.

위원들이 회사의 경영현안을 이해하는 과정도 없고,후보자를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위원들 간 토론도 없다.

각자 알아서 자기 나름대로 평가한다.

결과적으로 자신과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사람에게 후한 점수를 주게 되고 이름이 많이 알려진 사람을 높게 평가하게 된다.

공기업 CEO 선발과정이 '미인대회'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 번째는 세부 과정이다.

CEO 공모기간은 보통 보름에 불과하다.

지원 의사를 확정짓고 회사 상황을 파악하고 경영계획서를 작성하는 데 보름은 너무 짧다.

인터뷰 시간도 짧기는 마찬가지다.

한 사람당 30분씩 진행되는 인터뷰에서 5명 안팎의 면접위원이 두 번 이상 질문하기가 어렵다.

헤드헌터가 간부급 인재를 발굴하고 추천하려면 최소한 한 달 이상,보통 두세 달 걸린다.

그런데 몇 만명의 직원을 책임지는 최고경영자를 '뚝딱 해치우듯' 선발하는 게 옳은 일일까.

보안도 중요하다.

재직자들은 자신의 지원 사실이 밝혀질 것이 두려워 지원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이 때문에 공기업 CEO 지원자들은 대부분 직장을 떠났거나 떠날 예정인 사람들이고 공모는 '은퇴자들의 잔치'가 되고 만다.

적어도 최종면접 전까지는 누가 지원했고,누가 탈락했는지가 공개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유능한 인재들의 지원을 유도할 수 있다.

커리어케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