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오페라단의 '피치 오페라 페스티벌'은 이탈리아 출신의 피에르 루이지 피치가 연출한 두 작품 <아이다>와 <투란도트>를 소개하는 무대다.

특이한 것은 한 작품의 공연 일정이 끝나고 다른 작품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두 작품이 하루 간격으로 같은 무대에서 교차 공연된다는 사실이다.

<아이다>는 15.17일,<투란도트>는 16.18일이다.

보통 대형 오페라 무대와 조명 등의 제반 장비 설치에 최소 며칠은 걸리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 비결은 여기에 있다.

먼저 두 작품은 원작에 대한 연출가의 모던한 해석으로 인해 세트 디자인이 상징적이면서도 단순하기 때문에 구체적이면서도 복잡한 고전적인 무대 디자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설치와 해체가 용이하다.

결정적으로 두 작품이 주요 세트를 공유하고 있다.

가령 <아이다>의 기본 무대인 피라미드 세트와 <투란도트>의 기본 무대인 계단 세트는 퍼즐처럼 재조립이 가능한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

조명 역시 두 무대를 포괄적으로 비추도록 했다.

넓은 구역을 커버하며 전체적인 컬러톤과 조도를 조절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 한 번 설치로 두 작품을 모두 운용할 수 있다.

이처럼 여러 작품이 정해진 기간 안에 나열되는 방식의 페스티벌에서 프로덕션 간에 의도적으로 세트를 공유하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제작비 절감을 위해 세트를 재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이 경우 반드시 같은 세트 디자이너의 다른 작품이어야 한다.

다른 디자이너의 세트를 자신의 작품에 재활용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

2005년 뮤지컬 <겨울 나그네>에서 무대 배경으로 쓰인 자작나무는 1년 반 정도 뒤 개.보수 과정을 거쳐 2007년 연극 <시련>의 첫 장면에 재등장했다.

두 작품 모두 제작사,연출가,디자이너가 동일하다.

2005년 뮤지컬 <돈키호테>에서 선보여 깊은 시각적 인상을 남긴 해바라기 세트는 같은 해 한국 뮤지컬 대상 시상식장의 무대에 쓰였다.

물론 같은 디자이너의 작품이었고 제작사의 창고에서 무상으로 임대한 것이었다.

영세한 대학로 무대에서는 재활용 비중이 더 높아진다.

눈썰미가 좋은 관객들이라면 한 공연에서 선보인 세트를 다른 공연에서 돌려쓰고 있는 모습을 가끔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 연극동아리마다 학내 공연에 필요한 벤치나 가로등을 구한다며 길가에서 멀쩡한 실제 기물을 술김에 뜯어온 선배들의 이야기도 무용담처럼 전해 내려온다.

필요가 없어진 세트는 분해해서 철골이나 재료만이라도 부분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

차제에 공동 세트 창고를 두고 서로 재활용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지 않을까? 물론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조용신 공연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