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세학 책의 상당수는 칼날 앞에 서지 말고 칼등에 머무를 것을 가르친다.

정면에서 위험에 맞닥뜨리기보다는 안전지대에서 다수와 입장을 같이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지침을 따라 자신에게 던져진 도전과 시련을 피하기만 한다면 늘 그 자리에 서 있게 된다.

물론 성공을 향해 한 치도 나가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검객이야말로 냉엄한 인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다.

끊임없이 적을 응시하면서 자신을 향해 언제 날아올지 모를 칼을 막으며 상대가 일순간 방심할 때 허를 찔러야만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김한겸 고려대 의대 병리학 교수(53)는 국내 의사 중에서는 최고의 검객.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목검을 잡은 뒤 40년 만인 지난해 7월 의료계 유일의 7단에 올랐다.

대한검도회가 승인한 292명의 7단 유단자 중 285번째다.

그가 칼을 잡은 계기는 단순했다.

마땅한 놀거리도 없던 어린 시절,김 교수 집에 숙식하며 가정교사로 있던 성균관대 재학생을 따라 자연스럽게 목검을 쥐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성균관대 검도장에서 이종림 8단(현 대한검도회 부회장)으로부터 본격적으로 배웠다.

이후 고교 3학년과 전공의 시절처럼 학업에 매진해야 하는 시기를 제외하고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김 교수는 "학생 때야 뭐라도 쥐어주면 으스대게 마련인데 칼을 잡으니 절로 신이 났다"며 "주위에서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더 열심히 하고 검도가 유일한 취미로 굳어버렸다"고 입문 배경을 소개했다.

그의 검도 수련은 의료계의 검도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1974년 고려대 의대에 진학한 그는 검도에 더욱 빠져들었다.

본과 2학년이던 1977년에는 검도 3단으로서 의대 최초로 검도부를 만들었다.

이후 고려대 의대 검도부는 최근 3년간 전국 의대 검도대회에서 연속 우승할 정도로 최강을 유지하고 있다.

그의 발길이 닿는 곳에는 줄줄이 검도 마니아가 생겨났다.

전국 18개 의대에 검도부가 만들어졌고 1995년 고려대 구로병원에 검도관을 마련했다.

2000년에는 한국의사검도회를 창립했다.

"제가 주동해 검도를 배우게 된 의사들이 족히 500명은 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의사검도회에 가입한 회원은 200여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생업 때문에 칼을 놓았냐고요.

실은 음지에서 칼을 갈면서 차후에 가입한 다음 학창 시절 당한 숱한 패배를 복수하겠다는 선수들도 많아요.

지기 싫어하는 의사들의 자존심 때문이겠죠."

김 교수는 수련 도중 세 차례의 큰 부상을 입었다.

1993년에는 오랜만에 운동하러 갔다가 아킬레스 건이 끊어졌다.

기초체력과 준비운동이 부족한 상태에서 상대의 허점을 포착하고 맹렬히 들어가는데 코끼리가 발뒤꿈치를 밟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허망하게 힘줄이 파열됐다.

1996년에는 죽도에 맞아 고막이 터지기도 했다.

2004년에는 진검으로 후배들에게 시범을 보이다 칼을 칼집에 넣는 도중 손가락을 베었다.

피가 뚝뚝 떨어졌지만 의연하게 시범을 마쳤다.

그는 이때를 두고 "저를 지켜보던 후배들이 칼이 저렇게 위험한 것이구나 하고 숙연해 했었다"며 "저도 이를 계기로 검도를 더 깊게 느끼게 됐다"고 회고했다.

김 교수는 크고 작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하면 할수록 검도의 매력에 빠져든다고 말했다.

극한의 상황에 나를 내던져 집중하는 데서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도 9년 더 정진해 기필코 8단에 오르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김 교수에게서는 검객의 눈매는 날카로울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푸근함이 묻어나왔다.

고려대 검도부 지도교수를 13년 동안 맡아오면서 다져온 인간적인 친화력이었다.

학교에서도 이를 인정해 의대 교수로는 이례적으로 올해 본교 학생처장을 맡겼다.

이 때문에 주말에도 빠짐없이 이런 저런 행사에 끌려가 학생들과 술을 마셔야 하는 게 즐겁고도 괴로운 일이라고.의학계에서도 대한병리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등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국가 지정 동결폐조직은행(폐암)과 인체유래거점은행(백혈병 간암 등) 등을 구축해 병리학자의 연구 인프라를 확충했고 학봉장군 미라 등을 부검해 사인을 밝히는 등 고고학 연구에도 일조하고 있다.

김 교수는 "대학생 때부터 검도 사범으로 많은 사람을 가르쳐서 그런지 지금도 '합시다'보다는 '하자'는 게 몸에 배어 있다"며 "다소 건방져 보일 수 있어도 제 뜨거운 가슴을 이해해주는 회원들이 많아 무난하게 학회를 이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의사가 겉으로는 선망받는 직업이지만 내부의 규율은 엄하고 경쟁도 치열합니다.

제가 전공한 병리학도 마음에 들지 않아 한때는 고심이 컸지요.

검도는 강한 체력과 집중력을 길러주고 예의를 지키며 살도록 가르칩니다.

검도가 인생의 동반자였기에 이런 저런 난관을 헤치고 이만큼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 아닐까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6단에서 7단으로 올라가는 데 최소 6년이 걸리고 다시 8단에 오르는 데 10년의 수련이 필요하다는 칼의 길.검도계에서 최고수가 될 것을 다짐하는 그에게서 단호함과 부드러움을 함께 읽을 수 있었다.

글=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사진=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