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사장단에 이어 16일 임원 인사를 실시,특검 수사로 어수선해진 조직과 전열을 재정비하는 작업을 일단락지었다.

큰 폭의 승진 인사를 통해 분위기를 일신할 것이란 일각의 예상과 달리 이번 임원 인사는 '평이했다'는 평가다.

예년과 달리 부사장과 전무 직급 승진자가 많지 않았고,깜짝 놀랄 만한 발탁 인사도 적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특징이 없다는 게 특징"이라며 "큰 폭의 물갈이보다는 조직안정에 무게를 뒀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와 승진연한을 채운 이부진 신라호텔 상무,이서현 제일모직 상무보 등 이건희 회장의 세 자녀가 승진 명단에서 빠진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경영쇄신안에 따라 삼성전자 고객총괄책임자(CCO)직에서 사임하는 이 전무의 해외 근무지는 조만간 이뤄질 보직인사에서 결정된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계열사별 임원 보직인사와 조직개편은 이달 말까지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옷 벗는 임원도 줄어

올해 삼성그룹 임원 승진자는 총 223명.400∼450명에 달했던 예년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상무보와 상무 직급이 통합되면서 해마다 180∼200명에 달했던 '상무보→상무 승진자'가 반영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예년과 비슷하거나 약간 줄어든 규모라는 게 삼성 측 설명이다.

승진규모는 예년과 엇비슷하지만 삼성그룹은 올해 인사에서 변화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했다.

우선 예년과 달리 차기 최고경영자(CEO) 후보군으로 꼽히는 부사장 승진자를 올해 8명으로 작년 30명,2006년 15명보다 크게 줄였다.

신규 임원 승진자도 올해 163명으로 작년 206명,2006년 207명에 비해 40명가량 적다.

그러나 전무 직급은 작년(54명)과 비슷한 52명을 승진시켜 '허리'를 강화한 게 특징이다.

부사장과 신규 임원 승진자가 줄었다는 것은 기존 임원 중 옷을 벗는 인원이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R&D,마케팅 인력 대거 승진

조직안정을 꾀하는 인사 속에서도 삼성은 지난해에 이어 또 다시 R&D 인력과 마케팅 인력들을 대거 승진시켰다.

올해 223명의 승진자 가운데 연구.개발과 기술부문 승진자는 88명으로 전체의 40%에 달했다.

삼성은 작년에도 전체 승진자의 44%에 달하는 206명의 R&D 인력을 승진시켰다.

R&D 인력이 대거 승진함에 따라 올해 승진 임원 가운데 총 82명(박사급 25명,석사급 57명)이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로 집계됐다.

마케팅 부문 인력의 승진도 많았다.

올해 마케팅 부문 승진 임원은 28명으로 전체 승진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년 11%에서 17%로 증가했다.

그룹 관계자는 "혁신제품 및 신기술 개발을 통해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글로벌 영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조직 슬림화 시동 건다

일각에선 삼성이 이번 인사를 통해 조직 안정을 꾀한 뒤 내년 초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최근 2∼3년간 조직이 너무 비대해진 상황에서 이건희 회장의 일선 퇴진으로 조직을 슬림화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대두되고 있어서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조직을 안정시키는 게 주된 목표였지만,내년 인사 때는 그룹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인력 구조조정과 대대적인 사업 재편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