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불과 2시간40분 만에 러시아 사할린의 주도 유주노사할린스크에 닿았다.

'망향의 섬' 사할린이 이렇게 가까웠던가 느낄 겨를도 없다. 승객들은 일제히 서울의 동사무소만한 공항 건물로 종종걸음 친다.

빨리 줄을 서지 않으면 입국 수속에만 한 시간 넘게 걸린다.

하루 한 번 왕복하는 사할린~인천 구간은 아시아나항공에서 가장 수익이 짭짤한 노선이라고 한다.

사할린 유전 개발을 위해 인천을 경유하는 다국적 인력들로 늘 좌석이 매진이기 때문이다.

◆넘치는 사람들,물가는 서울의 3배

사할린은 러시아 최초의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지다.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1위(348억t 추정)인 러시아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주로 유럽으로 천연가스(PNG)를 수출해왔다.

아시아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자 한ㆍ중ㆍ일 등 아시아 수출거점으로 새삼 떠오른 것.5월까지 녹지 않는 유빙과 척박한 기후로 미개척지였던 사할린은 이제 엑슨모빌,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등 오일메이저와 중국 CNPC,일본 미쓰비시,인도 ONGC 등 주요국 에너지기업들의 전쟁터가 됐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도로변에 엑슨모빌이 직원용 사택을 짓고 있다.

화려한 색색의 외국인 고급 주택이 맞은편 낡은 러시아인 공동주택과 크게 대조적인 풍경을 보여줬다.

최근 사할린에 사무소를 낸 한국석유공사의 남승철 부장은 "물자는 부족한데 외지인이 몰리니 된장찌개가 서울의 3배인 1만5000원이나 한다"고 귀띔했다.

방 한 칸 월세가 2년 새 6000루블(약 24만원)로 두 배 뛰었는데 이마저도 없어 일부 직원들은 호텔에 묵는 실정이다.


◆자원국유화에 오일메이저도 애로

북동부 해안 프리고로드노예의 LNG플랜트로 가는 도로는 석 달 전까지 흙먼지길이었지만 지금은 엑슨모빌에 의해 깔끔하게 포장돼 있다.

연산 480만t급 트레인(액화시설) 2개 중 하나가 완공돼 시운전을 알리는 불길이 타올랐다.

'사할린-2' 프로젝트의 필툰과 룬스코예 가스전에서 생산된 가스를 이곳에서 LNG로 만들어 이르면 연말께 수출을 시작한다.

세계 가스 생산량의 6%를 차지하는 이 프로젝트는 가즈프롬과 셸,미쓰이,미쓰비시 등으로 구성된 사할린에너지가 맡고 있다.

첫 생산 물량은 이미 일본,한국 등에 이미 98%가 팔렸다.

사할린 전역에서 유전ㆍ가스전 개발이 한창이지만 외국기업들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최근 러시아 하원이 석유 등 '전략산업'에 대해 외국기업의 지분 소유를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와 관련,요즘 사할린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사할린-4' 유전을 개발 중인 BP의 철수 움직임.BP는 2개 층의 사무실 대부분을 한국석유공사에 넘긴 데 이어 자재까지 팔겠다고 나섰다.

시추 결과 매장량이 부족하다는 게 주된 이유지만,러시아 정부와의 줄다리기 탓이란 시각도 많다.

BP는 PSA(생산물 배분) 계약에서 해외 자원기업에 대한 혜택이 사라지면서 수익성이 떨어져 t당 최고 154달러에 달하는 수출세를 감면해주지 않으면 완전 철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자원개발의 샌드위치

러시아 정부는 이달 초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이유로 '사할린-3'의 키린스키 블록 사업권을 국영 석유회사인 가즈프롬에 입찰없이 넘겼다.

이미 석유ㆍ가스를 생산 중인 '사할린-1ㆍ2'와 인접한 '사할린-3'는 5000억㎥의 가스와 10억배럴의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석유공사와 가스공사 등이 지난해부터 개발권 확보에 공들여왔던 곳이다.

중국 시노펙은 러시아 로즈네프트와 합작해 '사할린 3' 베닌스키 블록을 이미 탐사 시추 중이다.

'사할린 3'에는 나머지 2개 블록 입찰이 남아있지만 일본이 지난달 후쿠다 총리의 러시아 방문에 맞춰 먼저 참여를 선언한 상태다.

진출 환경은 척박해도 사할린은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자원의 전략지역이다.

하지만 과거 '사할린-6' 광구를 낙찰받고도 유전게이트 와중에 잃어버린 뒤 한국 기업들은 아직 개발 실적이 없다.

한ㆍ중ㆍ일 3국 간 경쟁에서 한국만 저만치 뒤처진 셈이다.

사할린에너지의 올렉 사포즈니코프 이사는 "가즈프롬,로즈네프트 등 러시아 국영기업들은 보다 경쟁력 있는 합작 파트너를 원한다"며 "일본의 풍부한 개발 경험과 중국의 막대한 자본력 사이에서 한국의 경쟁력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유주노사할린스크ㆍ프리고로드노예(러시아)=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