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7일부터 4일간 이뤄지는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국내 기업인들이 대거 동행한다.

미.일 순방 때의 26명보다 12명 많은 38명에 달한다.

국내 4대 그룹 총수들이 대통령 해외출장에 총출동하는 건 4년 여만이다.

재계와 기업들에 중국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방증이다.

그렇지만 중국 내 비즈니스 여건은 한국 기업에 호의적이지 않다.

중국에 진출한 배경이 '값싼 노동력'인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상황이 달라졌다.

임금과 복지 수준에 대한 높아진 기대치는 회사와 종업원 사이의 이해 상충으로 그대로 연결되고 있다.

올 들어 중국이 강화된 노동관계법을 시행하자 일부 한국 기업들이 야반도주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취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사업 여건이 악화되면서 일부 대기업들은 중국 투자에 대한 완급 조절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기업과는 대조적으로 폭스바겐이나 일본 마쓰시타가 중국에서 계속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뭘까.

개방 초기에 진출해 입지를 굳혔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관시'(關係)다.

의리나 혈맹을 중요시하는 중국인들의 관습을 제대로 이해하고,비즈니스를 벌여온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개혁.개방에 따른 민주화운동으로 1989년 발생했던 톈안먼 사태.지금은 한 무리의 탱크들을 한 청년이 두 팔을 벌려 막고 있는 사진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당시 중국 내 정치 상황은 매우 불안했다.

죽(竹)의 장벽을 넘어 중국에 진출했던 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보따리를 싸고 중국 탈출 러시를 이뤘다.

그러나 마쓰시타는 흔들림없이 중국 내 사업에 매진했다.

중국인들은 정치.사회적 혼란에도 꿋꿋하게 버텨준 마쓰시타를 높이 평가했고,마쓰시타는 이후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일본이란 이미지에 덧입혀진 '중·일 전쟁'이라는 색깔을 옅게 만든 것은 물론이다.

2003년 사스(급성 중증호흡기 증후군)사태 때도 중국에서 체류하며 사회공헌활동 등을 벌인 기업들은 중국인들의 환대를 받았다.

지금 중국은 쓰촨성 대지진으로 추도 분위기 일색이다.

매몰된 사람들이 여전히 많고,2차 재앙 가능성도 높아 중국 국민들은 당분간 비통감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기업 총수들은 이번 중국 방문 때 중국인들을 보듬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선물 보따리'를 들고 갈 필요가 있다.

구호자금 전달에만 그치지 말고 현지 법인들을 통한 구호활동 등도 적극 독려해야 한다.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는 '필요에 의한 관시'가 아니라 '마음으로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관시'를 맺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자주 쓰이는 사자성어 중에 '환롼즈자오'(患亂之交)란 말이 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라는 서양 속담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국적을 초월하는 인류애를 발휘하면 한국 기업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는 덤으로 뒤따를 것이다.

일본 국제긴급구조대가 한 여인의 시신 앞에 도열해서 묵념하는 모습에 중국 네티즌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기호 산업부 차장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