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을 '일확천금'의 재료쯤으로 보는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지금의 재개발 문제는 풀리지 않을 겁니다.

백년대계의 개발계획을 국가 차원에서 관장하고 원주민(세입자 포함) 정착을 우선하는 공생 개념의 균형개발을 추진하는 선진국 재개발에서는 한국 재개발에서의 부작용이 흔치 않죠."

한국경제신문이 서울시내 구청장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서 구청장들의 대다수는 집이 투기의 대상이 되는 현실적 상황에서 선진국형 공영개발 확대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주택도시연구원 임서환 도시재생사업단장은 "용적률 남발을 통한 민간(조합과 건설업체)의 수익보전에 의존하는 현행 재개발 체제를 지속되는 도시의 주택문제해결도 요원"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주장은 국가.공공기관은 물론 비영리단체까지 재개발사업이 가능토록 하는 다양한 방식의 '선진국형 공영개발 확대'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민.관 혼합방식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일본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재개발(도시재생)전담기구를 두고 도시개발을 관리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쏙 빠지고 오직 민간의 수익률 계산에 의해서만 진행되는 국내 재개발 체계와는 큰 차이가 있다.

선진국의 경우 재개발구역의 총 주택공급량을 보면 오히려 한국보다 휠씬 많다.

주택크기 조정을 통해 원주민 거주주택을 모두 공급하고도 남는 물량을 팔 정도다.

집과 땅을 가진 원주민 위주로 주택을 공급하면서도 재개발을 통해 도시주택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외쳐되는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선진국,재개발 전담 기구 운영


영국은 국가 지자체 민간의 협력 체계를 매우 잘 활용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우선 재개발을 관장하는 국가기구인 EP(English Partnership)를 두고 있다.

여기서는 기술 자금력과 공공부문을 효과적으로 조율하는 민관협력 프로그램을 만들어낸다.

영국의 도시 재개발 체계는 상급기관인 지역개발공사(RDA)가 지역경제개발전략 방침을 결정하고,일선 정부지방사무소(GOs) 내 지역전략회의(LSPs)가 이를 받아 민간기업과 협의해 사업계획을 짜는 형식이다.

또한 지역개발공사는 일선 지자체, EP와 함께 금융 출자를 통해 지역 내 주요 도시의 개발사업을 추진할 도시재생공사(URC)를 설립한다.

지역개발공사는 이들 도시재생공사에 재개발에 대한 예산을 책정하고 지출한다.

일본은 도시 재개발을 국가 차원에서 접근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주요 도시 재개발 사업에는 공영개발 방식과 공영과 민간의 혼용 방식이 적극 도입된다.

국가기구인 도시재생(재개발)본부가 조직돼 있다.

특히 정부는 도시재생특별조치법을 제정해 도시경쟁력 제고차원에서 도시 재개발 사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2006년 7월 이후 도시재생본부가 직접 추진 중인 도시재생사업은 제1차부터 제11차까지 21개에 달한다.

공영개발로 지정되는 시범사업은 교부금 형태의 금융 지원도 이뤄진다.

마치쓰쿠리 재개발사업의 경우 2004년부터 3년간 5260억엔이 지원되기도 했다.

민간재개발 사업에도 도로 공원등 공공시설 건설에는 무이자 대출을 해준다.

또한 도시재생펀드 창설 등을 통한 금융 지원도 제공하고, 민간 재개발에 협력하는 토지 소유자에게 세제 감면을 해주는 이색적 제도도 운영한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1960~70년대까지는 민간을 통한 도시슬럼지역 정비에 재개발의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는 공영개발 개념을 대폭 보강해 쾌적한 도시 재생을 목적으로 한 재개발을 추진해오고 있다.

개발 방식도 민간과 공영개발을 적절히 혼합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공영개발 주체로는 각 지역의 비영리단체까지 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혀 놓고 있다.

특히 공영재개발은 원주민(세입자 포함) 정착률을 높이고 자립형 도시개발이 이뤄지도록 세심한 관리를 하고 있다.

○건설시장 위축과는 별개

재개발시장에 공영개발 방식을 확대할 경우 건설업계 일각에서는 현행 민간 중심의 재개발시장을 위축시킬 것이란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선진국처럼 정부가 도시 재개발을 비중 있게 생각하고, 정부 특별기구를 포함한 지자체, 공공기관, 비영리 단체 등이 민간과 함께 재개발을 펼칠 경우 일감이 크게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택지전면수용 방식을 도입해 추진한 은평뉴타운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은평뉴타운 사업이 민간에 맡겨졌을 경우 사업 추진이 지연돼 아직까지도 거대한 공사 물량이 건설시장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란 뜻이다.

공영개발 방식을 더욱 다양화하고 공공기관이 개발 이익이 적은 노후밀집지역에 대한 개발에 나설 경우 현행 민간이 추진하는 재개발사업에 이들 물량이 추가돼 전체적인 공사 물량은 훨씬 증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박영신 기자 ys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