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인 김상진씨는 보름 전 자신이 보유 중인 서울 강남 개포동 주공아파트 42㎡(13평형)를 7억8000만원에 매물로 내놓았다.

지난주 가격을 7억6000만원으로 내렸지만 여전히 사려는 사람이 나서지 않고 있다.

김씨는 국회의원 총선거 이후 재건축 규제가 풀릴 것으로 믿고 기다렸지만,소식이 없자 집을 처분해 다른 곳에 투자할 생각이다.

강남의 재건축 예정 단지들에 매물이 쌓여가고 있다.

해마다 종합부동산세 부담이 커지는 데다 대출이자 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서다.

그동안 재건축 규제가 풀리기를 기다려온 투자자들도 이제 지쳐가고 있다는 얘기다.


◆강남 집값 18개월 전으로 회귀

강남 집값은 1998년 11월 저점을 찍은 뒤 이후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2000년대 들어 본격적인 오름세를 나타냈지만 작년을 기점으로 하향세가 완연해졌다.

강남 3개구(강남.서초.송파) 아파트지수(2000년 1월=100)는 이 같은 흐름을 잘 보여준다.

이 지수는 지난달 말 348.97로 떨어져 2006년 11월(349.84) 수준에 근접했다.

강남 3개구 아파트(입주 단지 기준)의 3.3㎡당 평균 매매가도 2006년 3006만원으로 사상 처음 3000만원을 웃돌았지만 작년에 2900만원대로 떨어진 뒤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다.

올 들어 강남 아파트의 3.3㎡당 매매가는 △1월 2962만원 △3월 2960만원 △5월(16일 기준) 2949만원으로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쏟아지는 급매물

강남권 아파트 값은 매물이 늘어남에 따라 약세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재건축 예정 단지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11억5000만~12억5000만원에 시세가 형성돼 있던 은마아파트 112㎡(34평형)는 이달 초 10억원에 팔리기도 했다.

재건축 규제 완화를 노리고 아파트를 사들였던 투자자들이 종부세 부담과 이자비용 등을 감당하지 못해 쏟아내는 매물이 많다.

재건축 단지의 약세는 일반 아파트 가격 약세로 이어지고 있다.

역삼동의 P중개업소 관계자는 "역삼 e-편한세상 79㎡(24평형)의 경우 집값이 강세였던 2006년 말 7억5500만원에 매매됐지만 최근에는 6억6000만~6억8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재건축 아파트 가격은 통상 일반 아파트 가격보다 3~4개월 선행하는 경향이 있다"며 "재건축 단지의 하락세가 일반 아파트 가격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7월부터 입주하는 송파구 잠실동 주공2단지 재건축 아파트(리센츠) 109㎡ 입주권은 8억원대 후반에 매물이 나와 있다.

입주를 마친 인근 트리지움(3단지)이나 레이크팰리스(4단지)보다 1억~3억원 정도 싸다.

물량 부담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강남 입주 물량은 9400가구였는데 올해는 2만4500가구에 달한다.

◆대세 하락인가

강남 집값이 대세 하락기로 접어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린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소장은 "2000년 이후 이어진 장기 상승 사이클이 마무리된 것은 맞지만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정부 정책 변화에 따라 강남 집값이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영진 내집마련정보사 사장은 '강남 불패' 신화는 이미 끝났다고 진단했다.

그는 "정부가 이중삼중으로 규제의 자물쇠를 채운 결과 강남 집값의 대세 하락은 이미 시작됐다"며 "당분간 재건축 규제가 완화될 가능성도 낮아 집값 하락 기조는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건호/장규호/정호진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