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패권시대] 제1부 (8) <끝> '지구 동쪽끝 미개척지' 서캄차카‥'지옥의 문' 러시아 마가단은 '자원 천국'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러시아의 동쪽 끝에 자리잡은 항구도시 마가단.5월인데도 기온은 여전히 영하권이다.
마가단 항구로 가는 길은 눈보라와 강풍으로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인구 13만5000명에 불과한 이 작은 도시는 한겨울 영하 50도까지 내려가고 열차도 연결되지 않은 척박한 곳이다.
구 소련 시절 정치범을 수용한 강제노역소로 악명이 높아 '지옥의 문'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석유를 찾아 이곳까지 다다른 한국 기업들에 마가단은 '자원의 천국'이 열리는 곳이다.
◆자원 찾아 지옥까지 왔다
한국석유공사를 비롯한 한국기업 컨소시엄(지분 40%)은 러시아 로즈네프트(60%)와 함께 마가단에서 500㎞ 떨어진 캄차카 해상에서 다음 달 본격 탐사시추에 들어간다.
한국 최초 해상유전이 될 서캄차카 시추작업을 위해 지난달 마가단에 보급기지를 열었다.
이곳에서 시추선까지는 뱃길로 꼬박 24시간,헬리콥터로는 2시간반이 걸린다.
이곳에서 해저 3000~4000m를 뚫고 내려갈 시추선 '두성호'는 이달 초 부산을 출발했다.
강풍을 뚫고 도착한 6000㎡ 넓이의 항만 보급기지에는 자재 선적작업이 한창이다.
크레인 옆에는 길이 12m,지름 8~36인치 원통형 케이싱(석유시추관)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시추공 2개를 포함해 총 8000m를 뚫을 수 있다.히말라야 높이와 맞먹는 길이다.
5척의 보급선을 통해 자재를 쉴 새 없이 시추선으로 들여가고 시추과정에서 나온 흙과 폐기물을 실어내오게 된다.
다음 달부터 24시간 근무체제로 들어가면 보급기지 인원만 100여명에 이를 전망이다.
◆37억배럴 추정,'최대 유전' 꿈꾼다
신석우 한국석유공사 커머셜디렉터는 "기후 탓에 6월부터 길어야 10월까지 시추작업이 가능하다"며 "시추공을 다 뚫고 원유ㆍ가스 매장량을 확인하는 데 빠르면 75일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하루 시추작업에 드는 비용은 3억원 남짓.하루에 아파트 한 채가 날아가는 대형 작업인 만큼 시추를 앞둔 석유공사 기술진들은 초긴장 상태다.
혹시라도 '부정'을 탈까봐 직원들 사이엔 개고기 금지령까지 돈다.서캄차카 광구는 4년 전 러시아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당시 추정 매장량 37억배럴로 한국이 확보한 유전 중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석유공사 측은 지난해 물리탐사에서 매장량이 최대 100억배럴을 웃돌 수도 있다는 결과를 얻고 더욱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한상근 사할린사업소장은 "만약 (원유가) 이만큼 나온다면 러시아에서도 최대급에 속하는 '대박'"이라며 "6만2680㎢에 달하는 광구 면적과 넓은 대륙붕 형태를 볼 때 희망을 가질 만하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파 봐야 아는 석유개발 사업의 특성상 실패 가능성도 반반"이라고 조심스레 덧붙였다.
서캄차카 유전개발 사업은 2004년 9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때 체결된 7개의 MOU 계약 중 가시적인 진전을 보이고 있는 유일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이때 로즈네프트와 손을 잡은 석유공사는 2005년 가스공사,SK에너지,GS칼텍스,대우인터내셔널,금호석유화학,현대종합상사 등 6개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로즈네프트와 설립한 공동운영회사 캄차트네프티가스는 네덜란드에 세운 지주회사 웨스트캄차카홀딩스가 지분 100%를 갖고 있다.
한국 측 컨소시엄은 이 지주회사의 지분 40%를 취득하는 형태로 참여했다.
러시아의 자원국유화 바람에 대처하기 위해 다소 복잡한 지분 형태를 취했다는 설명이다.
◆자원국유화가 걸림돌
서캄차카 해상유전 개발에 참여한 것은 한국 기업이 최초다.
세계 석유메이저들도 이 사업이 어떤 성과를 낼지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 최대 에너지기업 가즈프롬이 최근 서캄차카 사업에 관심을 표명,한국 컨소시엄을 긴장케 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지난 8일 가즈프롬 측은 아직 "한국 측 사업지분이나 참여도에 대해선 영향을 미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로즈네프트의 지분을 두고 변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차세대 자원의 보고인 캄차카도 자원패권주의에서 예외가 아닌 셈이다.
하지만 캄차카 선점에 나선 한국에 기회는 적지 않다.
100여명으로 구성된 마가단한인회 측은 "젊은 인구의 유출로 이 지역이 많이 쇠락했지만 러시아 정부가 극동지역 개발계획을 내놓고 있어 기대가 크다"며 "두 달 전 한국의 한 중소기업이 갈탄 개발을 위해 방문하자 마가단 주지사가 직접 현장을 안내하며 투자유치에 열을 올렸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극동ㆍ바이칼 지역 경제사회 개발프로그램'을 통해 2013년까지 극동 지역 개발에 231억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공항 17곳과 항만 10곳을 개ㆍ보수하고 병원 8개를 신축하는 등 인프라 확충 계획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김무영 주(駐)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는 "러시아는 2012년 APEC(아ㆍ태 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수도 모스크바가 아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하기로 하는 등 극동개발 의지가 높다"며 "늘어나는 인프라 사업을 기회로 한ㆍ러시아 간 자원개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가단ㆍ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