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1일 운하의 단계적 추진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비교적 손쉬운 부분인 ‘뱃길 정비’부터 먼저 하고,강과 강을 잇는 연결공사는 뒤로 미룬다는 것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미 여권 내부에선 운하를 원안대로 추진하기보다 수질 개선 작업부터 시작하고 ‘연결 공사’는 국민의견을 수렴해 가면서 계속 논의하자는 ‘속도조절론’이 나왔었다.

대선 과정에서 약속했던 ‘취임직후 전면적 추진’에서 대폭 후퇴했다.여론 악화와 낮은 국정 지지도로 대운하 국면을 정면돌파할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우회로’를 택한 것이다.

◆3단계 추진=청와대에선 단계실행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쉬운것부터 먼저 한다는 것이다.

새 정부의 당초 계획은 경부ㆍ호남ㆍ충청 운하를 동시에 추진한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전략적 차원에서 방법을 바꿨다.거부감이 적은 쉬운 것부터 시작해 타당성을 입증해가면서 여론의 동의를 얻어간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경인운하(18㎞) 사업을 먼저 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굴포천 방수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14.2㎞가 운하 모양을 갖추고 있어 추진하는 데 큰무리가 없다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다.동시에 경부운하 중 낙동강 구간,호남 운하 가운데 영산강 구간

은 준설을 통해 정비 사업을 착수하는 방안도 세워놓고 있다.준설은 수질개선의 효과가 있어 환경논란을 피해갈 수 있다.하천 정비가 끝나면 시범적으로 배를 띄운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해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2차로 한강에 배를 띄운다는 구상이다.이를 통해 상수원 오염이 되지 않는다는 게 입증되고,여론이 개선되면 마지막 단계로 조령터널(25㎞)을 뚫어 경부운하를 완공한다는 것이다.

◆운하 철회 명분?=단계적으로 추진하다 보면 자연히 사업 기간이 대폭 늘어날 수 있다.공약대로 임기 내에 완공한다는 게 불가능할 수 있다.

청와대는 국민적인 반감을 무릅 쓰고 임기 내에 완공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추진하지는 않는다는 방침이다.

‘물길 정비’를 내세우고 임기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은 사실상 운하 강행에서 철회하기 위한 명분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단계마다 여론이 운하에 대해 부정적이면 사업은 ‘스톱’이 되면서 환경 정비 사업에만 머물 수 있다.

운하의 명칭은 ‘뱃길 살리기’ ‘물길 잇기’등으로 바뀔 공산이 크다.청와대 참모는 “기본적으로 대운하라는 명칭이 적절치 않다”며 “그래서 물길 잇기 등으로 바꾸자는 제안도 나왔다”고 말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