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대표하는 미인들이 여기저기서 몰려든 가운데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살아남는 숫자는 줄어든다.
최종적으로 '진'을 가리는 마지막 라운드는 숨을 죽이게 한다.
지금의 경제학이 있기까지 기여한 모든 경제학자들(이미 세상을 떠난 경제학자들을 망라해서),예컨대 애덤 스미스에서 존 메이너드 케인스,로버트 솔로에서 폴 로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제학자들이 저마다 논문을 가지고 실력을 겨룬다고 상상해 보자.최종적인 승자는 과연 누구일까.
대학을 흔히 상아탑이라고 말한다.
그 상아탑에 속해있는 경제학자들이 모인 학술대회라면 외부에 어떤 이미지로 다가올까.
난해한 수학,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용어들로 가득 찬 논문을 떠올리면 그것처럼 지루하고 따분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확 밀려온다.
그러나 학술대회에 모인 경제학자들은 진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도 생존게임을 하듯 치열하게 경쟁하고 진화를 해오지 않았겠는가.
누군가가 한 시대를 풍미하다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다른 누군가에 밀려나고,그 자리에 화려하게 등장한 사람도 결국 비슷한 운명을 거치면서 말이다.
경제학자도,경제역사학자도 아닌 오랜 기간 경제 전문기자로 일해 왔던 저자는 바로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아카데믹 세계에서 전개돼왔던 재미없는(?) 경제이론의 발전과정을 저자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풀어낸다.
이것만 읽어도 시간과 비용에 대한 본전은 충분히 뽑는다.
그러나 저자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후반부에 나온다.
저자가 승자라고 믿는 경제학자와 그의 이론에 관한 스토리는 여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몰라도 지금까지의 승자는 바로 폴 로머라고 저자는 단정한다.
이른바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을 들고 나온 경제학자다.
지식이 부의 원천인 지식경제학의 미스터리는 바로 여기서부터 풀리기 시작했다는 메시지를 저자는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폴 로머를 이렇게 큰 영웅으로 부각시킬 수 있었던 것은 저자가 경제학자가 아닌 기자였기에 가능했는지 모른다.
흔히 3대 생산요소라고 하면 토지,노동,자본을 떠올릴 만큼 전통 경제학에서 인간의 지식은 블랙박스로 취급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노동과 자본으로 경제성장에 대한 설명이 안 되는 '나머지' 부분이 있으면 그 때서야 기술이나 지식으로 돌릴 만큼 의도적으로 무시당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 나머지가 더 이상 나머지가 아니라 노동과 자본을 압도할 정도라면 어찌되는가.
지식을 생산의 범주에서 소외시킨 채 다른 생산요소만으로 아무리 세상을 분석한들 제대로 설명될 리가 만무하다.
영국의 산업혁명이 통계수치를 잘못 분석해서 나온 환상이라면? 아이디어나 지식재산권 같은 용어들은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규모의 경제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중소기업은 어떻게 살아남는 것인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이른바 '핀 공장'이론 간의 딜레마는? 21세기 핀 공장은 과연 어디일까? 독점은 시장경제의 필요악인가? 부자는 점점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을까? 1970년대 일본의 경제성장과 2000년대 중국의 도약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어느 날 '지식'이라는 블랙박스가 활짝 열리고,그 결과 전통적인 3대 생산 요소가 지식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애덤 스미스 이래 경제학이 안고 있던 이런 모순과 딜레마들이 해소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경제학은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된다.
이런 과정들이 생생하고 박진감있게 그려진 점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저자도 인정하고 있듯이 경제성장 그 자체에 대한 수수께기는 아직도 완전히 풀린 게 아니다.
어쩌면 경제학의 변화는 이제부터 시작인지 모른다.
안현실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