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짓는 데 그대가 꼭 필요하다.

스스로 국난을 지은 허물은 다 나에게 돌리겠다.

다만 대원군을 위해 명백하게 사실을 밝혀 이 글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 글자를 볼 때마다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하라."

임오군란으로 대원군이 청나라 군대에 잡혀가자 고종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에게 이렇게 명했다.

청나라 황제에게 보낼 감동적 주문(奏文)을 지으라는 얘기다.

그 문장가가 바로 이 책의 저자 이건창(1852~1898년)이다.

이건창은 창강 김택영(1850~1927년),매천 황현(1855~1910년)과 함께 구한말의 3대 문장가로 꼽히는 인물.중국의 당대 대가들이 "이 사람이 중국에서 태어났다면 마땅히 우리가 이 벼슬자리를 양보해야 할 것"이라고 했을 정도로 문장이 빼어났다고 한다.

이 책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낯선 이름인 이건창이 남긴 180여편의 산문 가운데 50여 편을 한글로 옮기고 간략한 해설을 덧붙인 것이다.

문장이론,논설과 평론,충성과 절의,가족과 나,백성들의 삶,효부와 열녀 등 7부로 엮은 그의 글들은 탁월한 문장 속에 지조와 절개,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형식도 다양하다.

"저 인간들은 포악하며 방자하고 탐욕스러운 짓을 해놓고서 어찌 다만 녹용을 먹음으로써 병을 낫게 하려는가?" '녹언(鹿言ㆍ사슴의 말)'이라는 제목의 글에 있는 이 구절은 사슴을 내세워 마음과 육신이 병든 당대 지식인들의 반성을 촉구한다.

몸이 허약하므로 녹용을 먹으라는 의사의 말에 사슴 사냥에 나선 이건창이 피곤해서 깜빡 잠이 든 사이 꿈에 사슴이 나타나 훈계하는 형식을 빌어 인간의 지나친 욕심이 화의 근원임을 지적했다.

"아! 슬프다.

봄바람이 때맞춰 불어와 만물이 생기가 나는데,어찌하여 반짝이던 눈동자는 다시 볼 수 없고 다정한 말 소리는 다시 들을 수 없는가?"

22세에 죽은 첫번째 부인에게 올리는 제문의 한 구절이다.

또 먼저 간 막내 동생에게 올리는 제문에서는 "최근에 너를 위해 상촌에 집을 한 채 지었다.

그곳에 장차 누가 사는가? 청상과부 제수씨뿐이요,외동 뿐이요,의자 하나와 탁자 하나뿐이다….애재로 통재로 원통하구나"라며 애통해 했다.

아관파천을 한 왕에게는 "즉시 대궐로 돌아와 예법을 시행하고 법과 제도를 확정하라"고 촉구하지만 백성들을 향한 시선은 자상하다.

술주정뱅이 이춘일이 병인양요 때 강화도 남문을 지키다 순국한 사연의 '이춘일전',평생 짚신을 삼으며 성인의 도를 추구했던 유씨 노인의 묘지명,사도세자를 하룻밤 모신 후 평생 정절을 지키며 산 '이수칙전',안주 기생의 헌신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은 '백상월전' 등에 민초들의 삶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담겨 있다.

첫장에 실린 문장론도 새겨들을 만하다.

"훌륭한 문장을 지으려면 먼저 뜻을 얽고,언어를 다듬고,말과 뜻이 서로 넘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글은 소리가 울려 아름다운 리듬이 있어야 한다.

나의 마음에 흡족한 문장을 추구하라.많이 짓는 것은 많이 고치는 것만 못하고,많이 고치는 것은 많이 지워버리는 것만 못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