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베트남 전통 쌀국수) 가격도 너무 올라 맘놓고 먹기 힘들어요."

베트남의 경제도시인 호찌민에서 만난 새내기 여성 직장인 응우옌 띠 뚱씨(26)는 "포요리 전문점에서 작년 말 2만4000동(약 1500원,1원=16동 상당)하던 가격이 올 들어 4만동으로 70% 가까이 급등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다른 생필품의 가격 상승은 이보다 더하다.

주식인 쌀과 기름값만 해도 2배 이상 치솟았다.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는 또 띠 뚜이씨(45·여)는 "쌀값이 10㎏에 10달러에서 20달러로 오르는 바람에 점심 때 시켜 먹는 도시락 값이 1달러에서 2~3달러로 올랐지만 질은 더 악화됐다"면서 "출·퇴근용 오토바이의 한 달 기름값도 20달러 정도에서 50달러로 늘어나 큰 부담"이라고 털어놨다.

집값 거품은 거의 정점이다.

한국인이 많이 사는 호찌민시 외곽 고급 주거지인 푸미흥 지구에서 방 2개짜리 아파트의 월 임대료는 지난해 750달러이던 것이 지금은 1500달러에 달한다.

이곳에서 15년째 합작은행으로 영업 중인 신한비나은행의 노성호 지점장은 "호찌민 시내 쪽은 더 심해 방 3개짜리 아파트가 3800달러나 된다"며 "이는 방콕의 3배를 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거침없이 고성장을 질주해온 베트남 경제가 경기 과열(오버 히팅)에 따른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공식적인 물가 상승률은 올 4월까지 11.6%이지만,일반 서민들의 체감도가 높은 생필품 값은 대부분 2배씩 급등했다.

게다가 수입 증가세가 수출보다 훨씬 가팔라 무역수지 적자폭이 확대되면서 외환 위기론이 불거지고 있다.

실제 지난해 120억달러였던 무역적자는 올 4월 말 벌써 111억달러에 달했다.

일본 다이와증권이 최근 보고서에서 "베트남이 수년 내에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것도 이 같은 사정에서다.

응우옌 동 띠엔 베트남 중앙은행 부총재는 "연말께 무역적자 폭이 180억달러까지 급증할 가능성도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과감한 수요 억제 정책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 경기 선행지표의 하나인 주가는 올 들어 반토막도 안 될 정도로 추락했다.

지난해 10월 1100선에 있던 베트남 비나지수는 6개월여 만에 420선으로 60% 이상 급락했다.

이 나라 최대 인력 송출사인 FPT 같은 회사는 66만동까지 올랐던 주가가 6만동으로 10분의 1 이하로 추락하기도 했다.

치솟기만 하던 부동산 값도 최근에는 심상치 않아 그동안 오버 히팅으로 자산에 끼었던 거품이 꺼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성훈 KOTRA 호찌민무역관장은 "최근에 분양한 아파트 값이 분양가보다 15~20% 떨어지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승국 대우건설 베트남 사업총괄 부사장도 "올해 초부터 미세하기는 하지만 부동산값 하락 조짐이 보여 조심스럽게 시장에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현지에 진출한 한국 업체들은 올 들어 임금이 30% 가까이 치솟는 상황에서 앞으로 더 올려 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것으로 예상돼 조만간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할지 모르겠다며 마음을 졸이고 있다.

이와 관련,이성훈 무역관장은 "베트남이 앞으로 이번 경제위기를 극복하더라도 더 이상 '블루오션'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졌다"고 진단했다.

베트남 정부 한 관료는 뒤늦게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그동안 12%로 제한해오던 예금이율 상한선을 지난 19일부터 18%로 6%포인트나 높이는 등 비상대책을 내놓고 있다.

높은 금리를 통해 과도하게 풀린 시중자금을 회수하고 물가 상승을 막겠다는 포석이다.

그만큼 베트남 정부도 무역수지 적자가 현지 화폐인 동화의 약세를 불러오고 떨어진 돈 값이 다시 물가를 자극하는 악순환을 우려하고 있다는 뜻이다.

경기 호조로 너무 많은 돈이 풀린 데 따른 문제점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유엔개발계획(UNDP) 하노이사무소의 조너선 핀커스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예금금리 상향 조정은 이제서야 베트남 중앙은행이 사태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정책을 전개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올해 베트남 경제성장률은 목표인 7%에 못 미치는 5% 선에 그칠 것"이라고 말해 베트남 경제가 회복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임을 시사했다.

물론 베트남 경제의 위기는 한국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핀커스씨는 "베트남 정부가 베트남항공 베트남제철 등 유망 기업의 정부 지분을 외국인 투자자에게 팔기에는 지금이 최적"이라고 조언했다.

한국 기업에 단순 투자가 아닌 지분 투자로 현지에 굳건한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얘기다.

호찌민=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