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도 약물 효과도 다르네

남녀의 성격 차이는 '화성에서 온 남자,금성에서 온 여자'란 책에서 명쾌하게 구분되었다.

남성은 논리적이고 문제해결 방식에서 명쾌한 정답을 구하려 하지만 여성은 애매모호한 성격을 갖는데다 실제 정답을 찾기보다는 문제를 누군가와 함께 해결하는 과정에 의미를 두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런 성격 차이는 질병의 발생과 약물의 효과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과거 의학계는 남녀가 생식기를 제외하고는 동일한 존재라고 여겨 이런 인식을 등한시했으나 최근에는 이를 심층적으로 연구하려는'성 인지(性 認知)'의학이 떠오르고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고혈압 심장병 뇌졸중 등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다.

서구 여성의 경우 두 명 중 한 명꼴로 심장병이나 뇌졸중으로 죽는다.

같은 질환에 걸렸더라도 남성보다 치료 예후가 매우 나빠 심장발작 후 1년 안에 38%가 사망하고,6년 이내에 46%가 심부전증에 빠지며, 60% 이상이 정상으로 회복되지 못한다.

여성호르몬은 동맥경화를 억제하고 혈압을 낮춰 심장을 보호하는 기능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폐경 전에는 여성이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낮지만 폐경 후에는 오히려 남성보다 훨씬 높아진다.

한 차례 심장마비를 겪은 후 재차 걸릴 확률도 여성이 매우 높다.

남자의 고혈압 유병률은 여자보다 다소 높다지만 치명적 상황으로 이어지는 경우에선 여성의 비중이 더 높다.

뇌졸중도 65세 이전에는 남성에게서 더 많이 발생하나 나이가 증가할수록 여성의 발생률이 현저하게 늘어나 뇌졸중에 의한 사망률도 여성이 남성을 앞지른다.

인지기능장애 후유증도 더 심하며 일상생활의 수행능력이 떨어진다.

현대사회에 가장 흔한 병인 비만 대사증후군 당뇨병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이런 질환을 앓고 있다면 동일한 상황의 남성보다 심장관상동맥질환 발병 위험도가 4∼6배 높아진다.

신경정신과 영역에서 우울증과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여성이 남성보다 2배 이상 발병률이 높다.

여성은 마음의 화를 잘 발산하지 못하는 특성상 우울증에 걸리기 쉽지만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적게 분비되는 것도 한 원인이다.

특히 세로토닌은 여성호르몬 분비량에 따라 변하므로 생리주기의 영향을 받는 여성이 감정의 기복이 심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같은 우울증 치료제라도 세로토닌의 고갈을 막아주는 선택적 세로토닌 수용체 차단제(SSRI)는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류머티즘도 여성이 남성보다 3배가량 많이 생긴다.

반대로 강직성 척추염은 남성이 여성보다 3배나 많다.

여성은 류머티즘을 비롯해 루푸스(전신성 홍반성 낭창),갑상선질환,베체트병,다발성경화증 같은 자가면역질환이 잘 생긴다.

이들 질환은 환자 4명 중 3명꼴로 여자가 많다.

이는 여성호르몬이 인체면역체계에 작용,자가면역질환을 유발하는 숨은 연결고리 역할을 하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소화기 분야에서 성인지 의학 연구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다만 여성은 신경이 민감하고 타액의 화학구조가 남성보다 소화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변비에 걸릴 확률은 남성의 3배,장질환에 걸릴 확률은 2배에 달하는 것으로 연구돼 있다.

이에 따라 여성용 약과 남성용 약이 따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약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간내 효소군인 사이토크롬 P450 효소군의 종류,농도, 활성도는 남녀가 차이를 보인다.

최근 미(未)발표 약물 임상연구 자료들을 보면 전체 연구의 28%에서 양성 간 약물대사 능력 차이가 배 가까이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여성호르몬 농도가 약물대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여성의 대다수가 폐경 이후 세대인 데다 한두 번의 생리주기 안에 임상시험이 종료되기 때문에 혈중 여성호르몬 농도 변화에 따른 약효 차이를 면밀하게 분석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유전자 측면에서도 같은 기능을 하는 유전자라도 성별에 따라 발현하는 양상이 크게 달라지는 것으로 연구돼 있다.

따라서 남녀의 신체적 정신적 차이를 인정해 치료법과 약물을 차별화해 적용하는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도움말=김경효 이화여대 목동병원 성인지 임상시험센터 소장(소아청소년과), 배종화 경희의료원장(순환기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