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에너지 대책으로 연비 1등급 차량에 대해 세제 혜택을 주기로 하고 관련 부처 간 협의에 나선 것은 해외 자원개발을 통한 에너지 공급 확대나 건물 냉난방 온도 제한과 같은 소비 억제 대책 만으로는 지금의 고유가 상황을 이겨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효율 자체를 높여서 적은 양의 에너지로도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연비 1등급 차량에 경차 혜택이 주어지면 2000cc급 중형 디젤승용차의 경우 약 200만원의 비용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경유값이 많이 올라 연비가 좋은 경유차에 대한 수요가 많이 줄었지만 이 같은 대책이 시행된다면 연비 1등급 디젤차량에 대한 수요가 다시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8월부터 연비 1등급 차량(ℓ당 15㎞ 이상 주행)은 경차 수준의 세제 혜택을 받게 된다.

우선 개별소비세(옛 특별소비세)가 면제돼 차량 가격 자체가 싸진다.

현재 경차를 제외한 2000cc 이하 차량은 판매가(부가세전)의 5%,2000cc 초과는 10%를 개별소비세로 매기고 있다.

예컨대 라세티 2.0 디젤 차량(정가 1845만원)이라면 지금보다 약 90만원의 구입 비용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아울러 차량을 운행하기 전에 반드시 들어가는 부대비용인 취득세(5%)와 등록세(2%)도 면제받는다.

도시철도 채권(서울 부산 대구 인천) 또는 지역개발채권 매입도 면제돼 약 20만원의 공채 할인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모두 합치면 200만원 이상 비용 절감 효과가 생길 것으로 정부는 예상했다.

이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고연비 차량은 아반떼 디젤 젠트라 1.2DOHC 등 44종이며 수입차도 혼다 시빅 하이브리드 등 3종이 포함됐다.

에너지 효율등급이 높은 차에 이처럼 파격적인 혜택을 주기로 한 것은 지금처럼 에너지 소비 효율이 선진국에 비해 낮은 상황을 방치해서는 백약이 무효라는 판단에서다.

26일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놓은 '해외 에너지 효율화 기술과 정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에너지 원단위(TOE/달러)는 0.351로 나타나 에너지 과소비가 심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0.221)보다 높은 것은 물론이고 이웃 일본(0.106)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높았다.

에너지 원단위란 각국의 에너지 소비 효율을 보여주는 지표로 실질 국내총생산(GDP) 1000달러당 투입된 에너지 소비량을 석유로 환산한 t수로 표시한 것이다.

이렇게 에너지 원단위가 비교대상국들보다 높다는 것은 에너지 효율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으로는 한국 산업구조가 에너지 집약적이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국제무역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04년 기준으로 한국 산업계의 총투입(중간투입+부가가치) 요소 중 에너지의 투입 비중(에너지투입계수)은 4.8%로 일본의 3.2%보다 1.6%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그만큼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산업 구조를 유지해왔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이 문제긴 해도 과거처럼 정부가 법규나 행정지도를 통해 민간 부문의 에너지 과소비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데 정부의 고민이 있다.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통한 효율화 대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아울러 정부는 각 산업별로 에너지 소비량 감축 목표를 정하는 자율협약을 재계와 맺기로 했다.

다음 달 5일 발표 예정인 자율협약에서 정부와 재계는 철강은 2020년 소비량을 2000년 소비량보다 10% 낮아지도록 감축 목표를 정하고 화학 제지 등은 에너지 원단위를 10% 감축하는 등의 내용을 협의 중이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