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석유 탐사·개발업체인 한국석유공사도 세계 100대 에너지기업 중 98위에 불과하다.

석유공사는 덩치를 키우기 위해 지난해 5월 처음으로 해외 에너지기업 M&A(인수·합병)에 나섰다.

석유공사가 점찍은 인수대상은 2억1700만배럴의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영국의 버렌에너지.하루 생산량 5만배럴에 불과한 석유공사 입장에선 글로벌 에너지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좋은 '먹잇감'이었다.

하지만 덩치가 작아 덩치를 키우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규모 열세·M&A자금 확보 한계

석유공사는 지난해 8월 버렌에너지 입찰 때 인수가격으로 32억달러를 제시했다.

하지만 강력한 경쟁 상대가 출현했다.

세계 10위권인 이탈리아의 국영 오일메이저 ENI가 35억달러 이상을 써낸 것.이에 맞서 석유공사는 37억~38억달러를 제시할 것을 검토했지만 그만한 자금을 끌어모을 재간이 없었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투자자금이나 회사 규모 면에서 열세를 극복하지 못해 인수를 포기한 점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털어놨다.

탐사유전 광구 입찰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찬호 주 이라크 대사는 "석유공사가 해외에서 생산하는 석유가 하루 5만배럴이라면 이라크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며 "생산 실적을 기준으로 광구 입찰자격을 심사하면 모두 탈락"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실 때문에 석유공사,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의 대형화나 민영화를 통해 자원개발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다니엘 사바 페루페트로 회장도 "한국은 기술력만으론 부족하고 덩치가 작아 손해보는 일이 많다"며 "에너지 기업의 대형화만이 살 길"이라고 조언했을 정도다.

정우진 에너지경제연구원 자원개발실장은 "하루 280만배럴을 수입하는 세계 8대 석유 수입국이면서 해외 석유개발 투자비는 가장 낮다"고 지적했다.

석유공사의 해외 투자비는 올해 8억달러인데 반해 한국보다 석유를 적게 수입하는 이탈리아 ENI는 11배인 87억달러를 쓴다.

석유·가스공사 통합론 저울질

정부는 국내 대표적인 자원개발 공기업인 석유공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가스공사와 묶거나 석유공사 자체를 대형화하는 방안을 놓고 고민 중이다.

구체적으로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의 합병 또는 한 지주회사 아래에 두는 형태를 저울질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선 광업진흥공사까지 한데 묶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자산 9조원인 석유공사와 11조원인 가스공사를 합쳐 자산규모 20조원짜리 석유·가스회사를 만든다는 복안이다.

석유공사는 납입자본금이 4조7000억원이지만 자본 효율성이 떨어져 통합 효과를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유전개발과 석유비축사업에 주력하느라 연간 매출은 겨우 1조원 선에 불과하기 때문.또 상장기업인 가스공사와 통합하는 과정에서 가스공사 주주들이 합병 조건에 만족하지 못해 주식매수청구권을 대거 행사할 경우 막대한 자금 부담이 발생하게 된다.

게다가 자원개발을 주축으로 한 석유공사와 가스 수입 사업이 뼈대인 가스공사의 통합이 과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겠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다시 주목받는 석유공사 자체 대형화안

이런 이유로 석유공사의 자체 대형화 방안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우선 자본금을 늘리고 책임경영제를 도입해 민간자본을 유치한다는 시나리오다.

생산량을 현재의 10배인 50만배럴까지 늘린 뒤 상장한다는 복안도 있다.

이 과정에서 SPC(특수목적법인) 설립을 통한 자체 대형화가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

SPC를 세운 뒤 국민연금,사학연금 등 각종 연기금을 끌어들여 20조~30조원의 재원을 바탕으로 해외 유전·가스전 매입이나 에너지기업 M&A로 덩치를 불린다는 계산이다.

석유공사의 자체 대형화 쪽으로 정부의 방침이 가닥을 잡으면 가스공사의 부분 민영화 추진도 동시에 가능해진다.

그러나 SPC 설립을 통한 투자는 이자 비용이 과다해지는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연기금 등의 출자금에 배당을 주면서 차입금 이자까지 꼬박꼬박 물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탐사나 개발 단계를 거쳐 생산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균 10년 이상인 점을 고려하면 SPC에 참여한 투자자들이 투자금 회수까지 기다려 줄 것인가의 문제도 있다.

◆에너지공기업 순차적으로 민영화해야

전문가들은 자원 개발에 대한 집중력을 높이고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한국도 영국의 BP나 프랑스 토탈과 같은 메이저를 육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석유공사는 자체 대형화나 가스공사와 통합을 통해 빨리 덩치를 키운 뒤 정부 지분을 민간기업들에 순차적으로 넘기는 민영화 방안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전력 공기업인 한전은 송·배전망을 관리하는 본부를 제외한 나머지 5개 발전 자회사를 매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역 발전자회사의 설비와 운영권을 민영화해 전력 생산·분배 구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자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낮은 전기요금 구조하에서 발전 자회사가 매력적인 매물이 될 수 없다는 점이 한계로 남는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