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조선업체 A사장의 고민은 요즘 온통 후판(厚板)에 쏠려 있다.

철광석 유연탄 등 철강제품의 원재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후판 값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서다.

주요 거래선인 중국의 후판 가격은 이미 t당 1300달러 선을 뚫었다.

작년 이맘 때에 비해 두 배가량 오른 것이다.

#동국제강은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최근 통합문서관리시스템(MPS)을 도입했다.

한국HP에 외주를 줘 사무실별 종이 사용량을 일일이 체크해 집계하고 있고 직원들 책상 앞에는 '흑백 종이 한 장 8.3원,컬러 종이 한 장 53.1원'이라는 안내문도 붙였다.

공장을 청소하는 외부 인력도 대폭 줄였다.

사원식당 등 일부 공간을 빼곤 모두 직원들이 직접 청소를 한다.

원자재발(發) 인플레이션 공포가 산업 현장을 휩쓸면서 기업들이 '살아남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탈출구'가 안보인다고 이구동성 아우성이다.

◆기업들, "돌파구가 안보인다"

업종이나 기업 크기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기업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원자재 값으로 인해 허덕이고 있다.

원자재값 폭등이 외부 변수라 기업들로선 뾰족한 대책도 없다.

기업마다 '마른 수건도 다시 짜는' 식의 피말리는 원가절감을 추진하고 있지만 효과가 크지 않다.

규모가 작은 화학 및 조선업체들 사이에서는 '고사직전'이란 비명까지 나오고 있다.

항공 등을 중심으로 원료비가 50% 넘게 늘어난 곳이 수두룩한 가운데 유가 급등이 물류비 증가로 이어지면서 기업들의 마지막 숨통마저 옥죄고 있다.

철강대란이 가라앉지 않으면서 지난 몇 년간의 호황에 편승,난립했던 중소 조선업체들은 기본 재료인 후판을 구하지 못해 일감을 떠안고도 조업을 감축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포스코 후판이 싸긴 하지만 중소업체에는 '그림의 떡'이다.

대기업들에 대주기에도 빠듯할 만큼 물량이 달리기 때문이다.

석유화학 및 운송업계는 패닉 상태다.

지난 2월 말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 국제유가가 불과 3개월 만에 130달러 선을 넘으면서 충격을 흡수할 틈조차 없다고 아우성이다.

유가에 연동하는 국제 나프타 가격은 1년 전만 해도 t당 700달러 수준이었지만 최근엔 1040달러까지 치솟으며 최고치를 연일 갈아치우고 있다.

여천NCC 관계자는 "국제유가와 연동하는 나프타가격이 차지하는 원가비중이 70%를 웃돌아 감산이나 공장 셧다운(가동중단)을 제외하곤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매출의 3분의 1을 유류비로 지출

대한항공은 지난 1분기 유류비로 8100억원을 썼다.

지난해 같은 기간 5400억원보다 50% 급증했다.

아시아나항공은 매출의 32%인 3000억원을 항공기 기름을 사는 데 사용했다.

지난해 1분기엔 매출 대비 유류비 비중이 24%였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지난해 1분기 1308억원이던 순익이 올 1분기 3255억원 적자로 곤두박질쳤다"고 말했다.

지방 중소기업 사정은 훨씬 심각하다.

부산플라스틱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고유가에 원자재값 부담이 커지는 데도 제품가는 제때 올려받지 못하고 있어 도산 위기를 맞는 회원사가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잇따르는 감산ㆍ가동 중단

쌍용자동차는 경유값 급등으로 수요가 급감하고 있는 SUV차량 렉스턴과 액티언에 대해 앞으로 6주 동안 감산하기로 결정했다.

현대ㆍ기아자동차는 원자재값 급등으로 원재료비가 차량 한 대당 50만원 안팎으로 증가하면서 자체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고 하반기께 가격을 올리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 중이다.

대한항공은 청주∼상하이,대구∼베이징 노선 운항을 일시적으로 중단키로 하는 등 6월부터 12개 노선의 운항편수를 감축한다.

아시아나도 중국 장춘 노선과 청주~제주 간 화물노선 운항 감축을 검토하고 있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는 유화 부문인 BTX 가동을 일부 중단하거나 감산한 데 이어 정유시설 가동률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런저런 눈치 때문에 소비자가격을 조정하지 못하고 있지만,더이상 원가 부담을 견디기 어려운 한계 상황"이라며 "하반기 이후엔 가격인상 도미노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수언/안재석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