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경영과 행정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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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인생을 마무리할 때가 되면 앨범부터 정리해야 한다고 한다.
훗날 부모 사진을 없애자니 찜찜하고 죄다 갖고 있자니 짐이어서 난감해할 자식을 생각,미리미리 치워줘야 한다는 얘기다.
사진이 그렇다면 기념패 등은 더할 게 뻔하다.
주물이나 유리로 돼 무거운 데다 부피마저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
알아서 없애야 하는데 이름이 쓰여 있으니 버리기가 쉽지 않다.
단단해서 깨거나 부수기도 어렵다.
썩지도 않을 테니 환경을 생각,부피가 작은 걸로 하든지 문서와 간단한 선물로 대체하면 좋겠다 싶어 여러 번 칼럼 주제로 정했다 내려놨다.
기념패 제작을 생업으로 삼는 이들이 많다는 데 생각이 미친 까닭이다.
세상 일에 명암이 함께 존재한다는 걸 알면 이런 식으로 마음이 복잡해진다.
힘없는 개인이 이럴진대 큰 조직이나 나라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실제 상당부분 추진됐다 변화에 따른 이해가 얽혀 무산된 법안들도 있다.
아파트 안방의 붙박이장 설치와 오후 3~5시 결혼 피로연 음식접대 금지 등이 그렇다.
이사할 때마다 무거운 장롱을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을 없애고 피로연 음식찌꺼기로 인한 환경 오염 등을 막자면 바꾸는 게 타당하지만 그랬을 경우 수많은 가구업체와 피로연장을 겸한 결혼식장 운영 업체 등에 미칠 영향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합리성과 실용성 면에서 보면 극히 당연한 개혁이나 개선도 관련 부문의 타격이 크면 이처럼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불특정 다수의 편의를 도모한 일이 특정 소수에겐 생계수단과 연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적 영역에서의 개혁,실용성을 앞세운 간소화가 말처럼 쉽지 않은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비효율적 업무가 언제까지 계속될 순 없다,사라질 단계나 일이라면 빨리 그만두고 다른 쪽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래 매달려온 일 대신 새 일을 찾는 게 쉬우면 뭐가 걱정이랴.밖에서 보면 비합리적이고 낭비적 요소가 짙은 일도 종사자에겐 생계가 걸려 있으니 하루아침에 다른 쪽으로 전환하기 힘든 것이다.
기업 경영과 국가 행정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경영이란 무한경쟁에서 승리해야 하는 만큼 1등을 방해하거나 위협하는 요인은 모두 쳐내고 배제해도 되지만,행정은 꼴찌도 살아가게 해줘야 한다.
기업에선 디지털화에 따른 결재 단계 축소 및 정보 공개로 역할이 줄어든 중간간부를 퇴출,'삼팔선 사오정'을 만들어도 나라는 그럴 수 없다.
경영은 적자생존 원칙에 충실,수익성과 효율만 따져도 되지만 행정은 그렇지 않다.
때문에 뭔가 바꾸려면 순기능 외에 역기능과 부작용까지 고려해야 한다.경제 활성화의 첫걸음이라고 믿은 실용화 간소화가 뜻만큼 실효를 거두지 못하거나 더디다 싶으면 단순히 담당자들의 게으름과 추진력 부족만 탓할 게 아니라 왜 그런지 잘 들여다봐야 한다.
무슨 일이든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나눠주기가 국민 복지의 해결책이 되지 못하듯 이렇다 할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개혁이라는 이름의 칼을 너무 많이 휘두르면 있던 일자리마저 없앨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경제 살리기라는 목표 달성은 더 멀어질지도 모른다.
박성희 수석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훗날 부모 사진을 없애자니 찜찜하고 죄다 갖고 있자니 짐이어서 난감해할 자식을 생각,미리미리 치워줘야 한다는 얘기다.
사진이 그렇다면 기념패 등은 더할 게 뻔하다.
주물이나 유리로 돼 무거운 데다 부피마저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
알아서 없애야 하는데 이름이 쓰여 있으니 버리기가 쉽지 않다.
단단해서 깨거나 부수기도 어렵다.
썩지도 않을 테니 환경을 생각,부피가 작은 걸로 하든지 문서와 간단한 선물로 대체하면 좋겠다 싶어 여러 번 칼럼 주제로 정했다 내려놨다.
기념패 제작을 생업으로 삼는 이들이 많다는 데 생각이 미친 까닭이다.
세상 일에 명암이 함께 존재한다는 걸 알면 이런 식으로 마음이 복잡해진다.
힘없는 개인이 이럴진대 큰 조직이나 나라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실제 상당부분 추진됐다 변화에 따른 이해가 얽혀 무산된 법안들도 있다.
아파트 안방의 붙박이장 설치와 오후 3~5시 결혼 피로연 음식접대 금지 등이 그렇다.
이사할 때마다 무거운 장롱을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을 없애고 피로연 음식찌꺼기로 인한 환경 오염 등을 막자면 바꾸는 게 타당하지만 그랬을 경우 수많은 가구업체와 피로연장을 겸한 결혼식장 운영 업체 등에 미칠 영향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합리성과 실용성 면에서 보면 극히 당연한 개혁이나 개선도 관련 부문의 타격이 크면 이처럼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불특정 다수의 편의를 도모한 일이 특정 소수에겐 생계수단과 연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적 영역에서의 개혁,실용성을 앞세운 간소화가 말처럼 쉽지 않은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비효율적 업무가 언제까지 계속될 순 없다,사라질 단계나 일이라면 빨리 그만두고 다른 쪽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래 매달려온 일 대신 새 일을 찾는 게 쉬우면 뭐가 걱정이랴.밖에서 보면 비합리적이고 낭비적 요소가 짙은 일도 종사자에겐 생계가 걸려 있으니 하루아침에 다른 쪽으로 전환하기 힘든 것이다.
기업 경영과 국가 행정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경영이란 무한경쟁에서 승리해야 하는 만큼 1등을 방해하거나 위협하는 요인은 모두 쳐내고 배제해도 되지만,행정은 꼴찌도 살아가게 해줘야 한다.
기업에선 디지털화에 따른 결재 단계 축소 및 정보 공개로 역할이 줄어든 중간간부를 퇴출,'삼팔선 사오정'을 만들어도 나라는 그럴 수 없다.
경영은 적자생존 원칙에 충실,수익성과 효율만 따져도 되지만 행정은 그렇지 않다.
때문에 뭔가 바꾸려면 순기능 외에 역기능과 부작용까지 고려해야 한다.경제 활성화의 첫걸음이라고 믿은 실용화 간소화가 뜻만큼 실효를 거두지 못하거나 더디다 싶으면 단순히 담당자들의 게으름과 추진력 부족만 탓할 게 아니라 왜 그런지 잘 들여다봐야 한다.
무슨 일이든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나눠주기가 국민 복지의 해결책이 되지 못하듯 이렇다 할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개혁이라는 이름의 칼을 너무 많이 휘두르면 있던 일자리마저 없앨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경제 살리기라는 목표 달성은 더 멀어질지도 모른다.
박성희 수석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