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 잇는 家嶪] (14) 리스템‥고물 엑스레이 수리·판매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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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템(대표 문창호.55)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국내에서 처음 엑스레이 진단기기를 만들어 판 '전쟁둥이' 기업.
미군 부대에서 폐기 처분한 것을 주워 만드는 '넝마상'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디지털용 엑스레이 진단기기 분야에서 미국과 일본을 뛰어넘을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필름이 필요 없는 디지털용은 국내 시장의 90%를 장악했고 필름용도 50%에 이른다.
문창호 대표는 "선친께선 기술을 배운 것도 아닌데 의료장비를 직접 제작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정말 대단하셨죠.누가 되지 않으려고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네댓 평 되는 창고에서 망치로 철판을 펴다가 잘못 내려쳐 다친 손가락을 헝겊으로 칭칭 묶고 작업하시던 선친을 생각할 때마다 지금도 눈물이 난다"며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렸다.
이제는 문 대표의 1남1녀 중 맏이인 문상진 해외사업부 팀장이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황해도 사리원이 고향인 문명화 창업주(2004년 작고)는 한국전쟁 중 피난 와 부산 영주동에 정착했다.
전쟁이 끝난 이듬해부터 미군 부대에서 폐기처분한 '고물' 엑스레이 진단기기를 주워 부품 교체 등 수리 작업을 거쳐 부산지역 의사들에게 팔았다.
당시만 해도 동네 의원에 엑스레이 진단기기가 들어오면 잔치를 벌일 정도로 희귀했다.
하지만 창업주가 1960년 대전에 공장을 짓고 동아X선기계공업(2000년 리스템으로 변경)이란 명패를 달면서 고생길이 시작됐다.
65년 한.일 협정 체결로 일본제 엑스레이 진단기기가 국내에 밀려든 뒤 한 달에 한 대조차 팔기 힘들었다.
문 대표는 "선친은 전셋방에서 사글세방으로 옮기고 사채까지 얻어쓰면서도 엑스레이 진단기기만은 내 손으로 만들겠다는 집념으로 사업에 대한 열의를 결코 잃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이런 모습을 지켜본 뒤 다니던 의대(충남대 의예과)를 아버지와 상의도 않고 1972년 자퇴했다.
아르바이트로 학자금을 벌어 연세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 79년부터 아버지를 도왔다.
때마침 정부가 일본과의 무역역조 개선을 위해 수입선다변화제도를 78년부터 시행하면서 일본제 엑스레이 진단기기의 국내 수입이 중단됐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당장 판매 증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른 업체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제살깎기 경쟁을 하는 상황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직원들이 퇴근하고 난 뒤 아버지와 함께 밤 12시를 넘겨서까지 일했지만 하루하루가 힘겨웠다"고 소개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엑스레이 진단기기에 들어가는 철판을 작두로 잘랐다.
작두의 '덜그덕' 소리와 함께 절단된 철판은 매끄럽지도 않은데다 잘린 부위도 삐뚤삐뚤한 경우도 많았다.
문 대표는 84년 추석 하루 전날 아버지 몰래 들고 나온 수금대금 850만원으로 서울에서 절단기를 구입,이 문제를 해결했다.
문 대표는 "'직원들 월급 줄 돈을 가져가는 놈이 어디 있느냐'며 아버지한테 빗자루가 부러질 정도로 두들겨 맞았다"고 털어놨다.
이후 문 대표는 대학에서 배운 전공을 살려 설계 공정단순화와 직원 교육 등을 직접 해가며 회사의 경쟁력을 키웠다.
문 대표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령탑에 앉은 때는 서울올림픽이 끝난 88년 11월.이 시점부터 문 대표는 해외 마케팅에 집중했다.
문 대표는 "40여개 업체가 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국내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데다 올림픽 이후 불기 시작한 글로벌화 바람에 눈을 해외로 돌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20여년간 방문한 국가만 120여개국에 이르고 비행시간도 3000시간이 넘는다"고 덧붙였다.
첫 수출은 90년 초 필리핀에서 이뤄졌다.
필리핀 보건성의 입찰에서 일본 미국 유럽 등 10여개 선진국 업체를 따돌리고 수주한 것.이 입찰을 통해 필름용 엑스레이 진단기기 23대(약 80만달러)를 필리핀에 공급하면서 수출 물꼬를 텄다.
또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팔라우에도 수출,지금까지 고객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팔라우는 인구 1만명에 병원이 4곳뿐인 소국."한 대라도 팔 곳이 있으면 어디든 가겠다"는 문 대표의 집념이 회사를 미국 일본 유럽 등 60여개국에 수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
특히 디지털용 엑스레이 진단기기(모델명 UNI-DR)는 필름 없이 촬영이 가능하고 영상조작은 물론 전송.저장기능이 뛰어나 지멘스 GE 필립스 제품보다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 대표는 "올해 원주공장에 생산설비를 추가로 들여와 매출 260억원(수출 1300만달러)을 달성하겠다"며 "회사를 엑스레이 진단기기 분야 최고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원주=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
미군 부대에서 폐기 처분한 것을 주워 만드는 '넝마상'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디지털용 엑스레이 진단기기 분야에서 미국과 일본을 뛰어넘을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필름이 필요 없는 디지털용은 국내 시장의 90%를 장악했고 필름용도 50%에 이른다.
문창호 대표는 "선친께선 기술을 배운 것도 아닌데 의료장비를 직접 제작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정말 대단하셨죠.누가 되지 않으려고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네댓 평 되는 창고에서 망치로 철판을 펴다가 잘못 내려쳐 다친 손가락을 헝겊으로 칭칭 묶고 작업하시던 선친을 생각할 때마다 지금도 눈물이 난다"며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렸다.
이제는 문 대표의 1남1녀 중 맏이인 문상진 해외사업부 팀장이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황해도 사리원이 고향인 문명화 창업주(2004년 작고)는 한국전쟁 중 피난 와 부산 영주동에 정착했다.
전쟁이 끝난 이듬해부터 미군 부대에서 폐기처분한 '고물' 엑스레이 진단기기를 주워 부품 교체 등 수리 작업을 거쳐 부산지역 의사들에게 팔았다.
당시만 해도 동네 의원에 엑스레이 진단기기가 들어오면 잔치를 벌일 정도로 희귀했다.
하지만 창업주가 1960년 대전에 공장을 짓고 동아X선기계공업(2000년 리스템으로 변경)이란 명패를 달면서 고생길이 시작됐다.
65년 한.일 협정 체결로 일본제 엑스레이 진단기기가 국내에 밀려든 뒤 한 달에 한 대조차 팔기 힘들었다.
문 대표는 "선친은 전셋방에서 사글세방으로 옮기고 사채까지 얻어쓰면서도 엑스레이 진단기기만은 내 손으로 만들겠다는 집념으로 사업에 대한 열의를 결코 잃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이런 모습을 지켜본 뒤 다니던 의대(충남대 의예과)를 아버지와 상의도 않고 1972년 자퇴했다.
아르바이트로 학자금을 벌어 연세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 79년부터 아버지를 도왔다.
때마침 정부가 일본과의 무역역조 개선을 위해 수입선다변화제도를 78년부터 시행하면서 일본제 엑스레이 진단기기의 국내 수입이 중단됐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당장 판매 증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른 업체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제살깎기 경쟁을 하는 상황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직원들이 퇴근하고 난 뒤 아버지와 함께 밤 12시를 넘겨서까지 일했지만 하루하루가 힘겨웠다"고 소개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엑스레이 진단기기에 들어가는 철판을 작두로 잘랐다.
작두의 '덜그덕' 소리와 함께 절단된 철판은 매끄럽지도 않은데다 잘린 부위도 삐뚤삐뚤한 경우도 많았다.
문 대표는 84년 추석 하루 전날 아버지 몰래 들고 나온 수금대금 850만원으로 서울에서 절단기를 구입,이 문제를 해결했다.
문 대표는 "'직원들 월급 줄 돈을 가져가는 놈이 어디 있느냐'며 아버지한테 빗자루가 부러질 정도로 두들겨 맞았다"고 털어놨다.
이후 문 대표는 대학에서 배운 전공을 살려 설계 공정단순화와 직원 교육 등을 직접 해가며 회사의 경쟁력을 키웠다.
문 대표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령탑에 앉은 때는 서울올림픽이 끝난 88년 11월.이 시점부터 문 대표는 해외 마케팅에 집중했다.
문 대표는 "40여개 업체가 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국내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데다 올림픽 이후 불기 시작한 글로벌화 바람에 눈을 해외로 돌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20여년간 방문한 국가만 120여개국에 이르고 비행시간도 3000시간이 넘는다"고 덧붙였다.
첫 수출은 90년 초 필리핀에서 이뤄졌다.
필리핀 보건성의 입찰에서 일본 미국 유럽 등 10여개 선진국 업체를 따돌리고 수주한 것.이 입찰을 통해 필름용 엑스레이 진단기기 23대(약 80만달러)를 필리핀에 공급하면서 수출 물꼬를 텄다.
또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팔라우에도 수출,지금까지 고객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팔라우는 인구 1만명에 병원이 4곳뿐인 소국."한 대라도 팔 곳이 있으면 어디든 가겠다"는 문 대표의 집념이 회사를 미국 일본 유럽 등 60여개국에 수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
특히 디지털용 엑스레이 진단기기(모델명 UNI-DR)는 필름 없이 촬영이 가능하고 영상조작은 물론 전송.저장기능이 뛰어나 지멘스 GE 필립스 제품보다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 대표는 "올해 원주공장에 생산설비를 추가로 들여와 매출 260억원(수출 1300만달러)을 달성하겠다"며 "회사를 엑스레이 진단기기 분야 최고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원주=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