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수 국무총리를 인터뷰한 지난 28일은 초여름 날씨였다.집무실 안은 후텁지근했다.실내온도가 26도를 넘지 않으면 냉방을 가동할 수 없다는 정부지침에 따라 에어컨을 켜지 않았기 때문이다.

와이셔츠 차림의 한 총리는 “웬만하면 참아야지요.다들 웃옷을 벗으시지요”라며 기자를 맞았다.

첫 질문으로 중앙아시아 4개국(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자원외교 성과를 묻자 대뜸 책상 옆으로 기자를 데리고 갔다.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만든 큼지막한 세계 자원 분포도였다.

한 총리는 가스전으로 빼곡한 투르크메니스탄을 가리키며 “이곳에서 한국이 100년 이상 쓸 수 있는 육상 가스전을 공동 개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강조했다.

―자원 전쟁의 격전지를 둘러본 소감은.

"한국은 우수한 인력,뛰어난 기술이 다 있지만 자원이 없습니다.

자원만 있으면 걱정할 게 없죠.이번에 우즈베크와 카자흐 등에서도 성과가 좋았지만 투르크멘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투르크멘은 그동안 꽉 닫혀 있던 나라입니다.

(세계 자원 분포도에서 투르크멘을 가리키며) 이곳을 보십시오.여기 파란 게 유전이고 빨간 게 가스전입니다.

전부 빨갛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이 나라가 그동안 육상 가스전을 어느 나라에도 개방 안 했는데 우리에게 공동 개발하자고 제안했다는 겁니다.

지난해 3월 가스전 하나가 터졌는데 불을 못 꺼 8개월이 갔다고 하더군요.

거기에 4조㎥,약 29억6000만t의 가스가 매장돼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1년 소비량이 2400만t입니다.

124년 동안 쓸 수 있는 양이죠.이것을 공동 개발하자고 한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잘 추진하면 100년 동안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투르크멘이 한국에 그런 제안을 한 배경은 무엇인가요.

"투르크멘은 옛날 실크로드의 핵심 지역입니다.

지금은 오일로드라고 할 수 있죠.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함메도프 대통령이 이제야 그 나라를 개방하려 합니다.

파트너는 정치적으로 부담이 없는 나라여야 하는데 한국만한 기술을 가진 나라가 없지 않습니까.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진 거죠.이번 방문 기간 중에도 베르디무함메도프 대통령과 단독으로 다섯 번이나 만났습니다.

투르크멘과 관계를 잘 맺어가면 그 한 나라만으로도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베르디무함메도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초 한국에 옵니다.

저쪽에서는 항만이나 관광단지,철도,시멘트,제지공장,탈황시설 등을 다 같이 하자고 합니다.

다음 달쯤 조중표 국무총리실장을 보내 자원개발과 경협 등을 논의토록 하겠습니다."

―자원외교의 과실을 맺으려면 후속작업이 중요합니다.

그 작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인력이 많아야죠.그러나 국내에는 자원 관련 전공학과를 두고 있는 대학이 6개에 불과합니다.

기업과 정부에도 전문인력이 부족합니다.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획기적인 복안은 없는지요.


"그동안은 인력 수요가 없었습니다.

자원협력 한다고 했지만 광구 얻는 것도 없었죠.앞으로는 중앙아시아 개발에 많은 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10~30년간 굉장히 많은 인력이 동원될 것입니다.

청소년들의 장래가 그곳에 달려 있습니다.

야심을 갖고 활동할 생각을 해야 합니다.

자원공학 분야의 장래성은 무궁무진합니다."

―정부에서 에너지 정책을 중장기적으로 보완할 수 있도록 민간 전문가를 공모할 생각은 없는지요.

"에너지 정책을 관장하는 부처의 주요 직위나 에너지자원이 풍부한 자원보유국에 파견하는 외교관의 경우는 관련 식견을 갖춘 전문가를 민ㆍ관을 가리지 않고 두루 기용하겠습니다.

그러나 해외자원 개발이 대부분 민간기업에 의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전문가 채용시 특혜 우려나 형평성 논란을 고려해 신중히 검토하겠습니다."

―자원개발 회사들의 덩치가 너무 작아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석유공사나 가스공사의 자본금이 미국 영국 등 선진국 에너지기업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게 사실입니다.

이런 자본 규모로는 큰 사업을 못합니다.

컨소시엄을 만들더라도 힘들죠.모두 규모를 키워야 합니다.

또 국내에서 해외자원 개발 펀드를 활성화하고 국민연금 등 연기금 투자를 적극 유도하는 식으로 자금을 동원해야 합니다.

안 되면 해외 자본ㆍ인력이라도 끌어다 개발해야 합니다.

꼭 우리 돈만 갖고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자원개발이 중요하지만 성공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갑니다.

우선 급한 것은 에너지 절약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에너지 자주개발률을 높이는 것은 중장기 대책입니다.

당장 기름값이 배럴당 130달러까지 올라가니 에너지 절약이 우선이죠.다행스럽게도 대중교통 이용자 수가 급증했다고 합니다.

국민들이 현명하게 경제적 판단을 하는 거죠.정부도 공공기관에 에너지를 10% 절약토록 했으니 기업들도 따라줬으면 합니다.

전경련이나 대한상의 등 경제단체 관계자들을 만나 부탁하려 합니다.

에너지값이 올라가는 게 불행이기도 하지만 절약하는 습성을 기르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원자력 비중을 높이는 일도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그동안 일반 물가가 100% 올랐다면 전기값은 10~15%밖에 안 올랐습니다.

어쩌면 행복한 일이죠.이게 원자력 덕분입니다.

우리는 원자력에서 전력의 40%를 얻고 있습니다.

원자력 분야에서 세계 두세 번째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설계부터 건설ㆍ운영까지 각 단계 기술을 우리만큼 축적한 나라가 없습니다.

원자로를 증설할 때 주민들의 저항이 없으면 에너지 부문에서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길게 보고 자원외교를 맡겼다고 들었습니다.자원 확보를 위해 다음 순방할 곳은 정했습니까.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찾아갈 겁니다.

일단 다음은 아프리카죠.중동도 에너지 수입을 많이 하니 인사를 해야 하고,그 다음은 남미 아닐까요.

캐나다도 샌드오일이 많으니 생각하고 있습니다.

알제리 리비아도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나라입니다."

대담=고광철 편집부국장
정리=박수진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