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

초여름 저녁 산책객들은 떼지어 날아다니는 작은 곤충들에 성가심을 당한다.

하루살이 성충의 삶은 이름처럼 짧지만 물속에서 지나는 애벌레 시절은 수년간에 이른다.

덧없이 보이는 현상도 제법 긴 준비기간을 거치는 법이다.

요즘 며칠 밤 연이어 벌어지는 촛불시위대가 서울 도심거리 혼잡을 더하고 있다.

하루살이의 곤충 군무(群舞)는 단순히 짝짓기 본능의 발동일 뿐이지만,시위대의 거친 몸짓은 정치 계산을 깔고 있다.

올해 봄철 황사 현상은 예년보다 가볍게 지나갔지만,서울의 정치적 황사는 몹시 농후하다.

여야가 서로 엇갈린 화두(話頭)에 몰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권은 "우파 정권,별 것 아니네"를 화두로 삼는다.

대선에 패배했어도 승복하기를 거부하는 그들은 최근의 민심동향에 한껏 고무돼 있다.

압도적 다수표로 청와대에 입성한 우파정권이 대승의 여세를 몰아 체계적으로 착실하게 실용주의 노선을 추진해 결과적으로 다시 장기집권의 기회를 잡은 듯 보였던 판세가 꺾인 것이 그들에게 위안이고 자극이 아닐 수 없다.

남들이 뭐래도 지난 10년은 "기억할 만한 10년" "다시 되찾아야 할 황금기"라는 자신감을 회복했다.

새 정부의 앞길을 막고 버티고 있는 구정권의 인적 제도적 대못들이 공권력 저항의 북소리를 울리고 있다.

외곽에서 부푼 기대감을 안고 신정부를 성원하던 보수적 국민 다수가 요즘 "우파 정권이 왜 이래" 걱정반 실망반으로 돌아섰다.

한ㆍ미FTA 협상타결을 둘러싼 민심이반을 몰고온 근시안적인 이해관계집단,부화뇌동하는 일반시민,이벤트 참가에 들뜬 철부지들,그리고 정치음모에 능한 야권세력은 판세변화의 피상적 잔가지들에 불과하다.

뿌리는 보수진영 내부에 깊이 박혀 있다.

정권 핵심부에 시대적 사명의식이 결여돼 있다.

치열한 선거전을 치르고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흐름에서 이 시대에 왜 보수정권이 들어서야 했는지,필수 아젠다와 금기사항이 무엇이고 우선순위가 무엇인지,정신무장의 긴장감이 풀려있다.

실용주의를 선택해 이념 다툼을 넘는다는 수사학적 표현은 "우파 정권 맞아? 시장주의 맞아?"를 의심할 만한 인사문제와 정책발상들을 빚었다.

한 차례 대선승리에 도취해 마치 보수 장기집권의 길이 열린 듯 착각하고 계파간에 권력투쟁,자리 챙기기 다툼이 연일 신문을 도배한다.

국민일반을 친이(李)ㆍ친박(朴) 가르기,출신지역별 학력별 직업전력별 차등인사에 식상했다.

뭉쳐서 세를 키워야 하고 달래서 어울려야 함을 잊을 만큼 오만했다.

국민일반이 던진 표의 덕이었지 주변인사ㆍ인수위 인사들의 입심으로만 집권한 건 아니었다.

그들만 능력있고 그들이 청렴한지 검증된 바도 없다.

사람이 없어 주요보직 인사가 지연된다고 하지만 좁은 공신들 인재 풀을 고집한 탓이다.

못된 관료는 버린다고 유능 관료마저 도매품으로 버림은 희소자원의 낭비이다.

냉장고에서 갓 꺼낸 야채도 신선도를 의심해야 하듯이 캠퍼스 밖으로 첫 발 딛는 정치교수들이 실무에 우월하다는 보장이 없다.

비빔밥처럼 다양한 경력자를 섞어야 제맛이 난다.

신정부에는 허니문 기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야권의 음모와 아침 저녁 달라지는 민심변화의 탓으로만이 아니고,대부분 집권세력의 자충수 때문임을 반성해야 한다.

시계추의 좌우 진동은 기계적ㆍ규칙적ㆍ불가항력적이다.

정치적 시계추는 다르다.

현 정부는 시계추 멈춤을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좌파는 다시 돌아온다.

그 시기 선택은 현 정부의 궤적에 달려있고 좌우 운동 진폭의 크기도 역시 그러하다.

성충되기 전 수면 아래 애벌레가 긴 준비과정 거침을 알아야 정치 곤충학에 입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