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미국 현지 투어팀이 내한공연을 가질 정도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1996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남자 주인공 줄리앙 마시 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는 유명한 작품이다.

그런데 제목은 같지만 전혀 다른 작품이 조만간 한전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문제는 이번 공연이 정식 라이선스를 획득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준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미국의 저작권 보유사 TAMS는 한국 제작사 측에 경고문까지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강행하는 한국의 제작사는 이 작품이 75년 전인 1933년에 제작된 영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고 이미 저작권의 기한인 50년이 지났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게다가 원작에는 없는 새로운 음악을 작곡했기 때문에 저작권 위반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비슷한 줄거리에 다른 음악을 써서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 하더라도 같은 제목만 보고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이 이를 순순히 이해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제작사는 중요한 사실을 의도적으로 간과하고 있다.

1933년에 개봉된 동명의 영화를 1980년에 낡은 벽장에서 꺼내 새롭게 무대 뮤지컬로 만들 수 있었던 근본적인 요인은 줄거리가 아니라 음악이 좋았기 때문이다.

사실 원작 영화가 쇼비즈니스의 이면을 다루는 다소 진부하고 결말이 예측되는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47년이나 흐른 후 굳이 무대에서 재탄생시킨 이유는 이대로 사장시키기에는 음악들이 너무 아까웠던 것.

원작 영화에는 비록 4곡밖에 들어있지 않았지만 당시 생존해 있던 작곡가가 다른 영화에 발표한 노래들까지 모아 무대 뮤지컬로 만들었다.

그런데도 중요한 노래는 빼고 줄거리만 살리면서 같은 제목을 사용한다면,결국 대표곡인 '42번가'나 '브로드웨이의 자장가' 같은 히트곡도 들을 수 없는 관객 기만용 '짝퉁' 뮤지컬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근본적으론 법망만 피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예술이란 새롭게 창조하는 미적인 행위가 되어야 한다.

최근 들어 너도나도 뮤지컬 제작에 뛰어들면서 뮤지컬산업의 파이를 키우기보다 오히려 질적 저하를 초래한다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마당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큰돈을 주고 객석에 앉았다가 기대와는 다른 작품임을 알고 황당해할 관객들이다.

제목을 아예 '종로 42번가'라고 하면 모를까….

조용신/공연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