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채 < 고려대 겸임교수·중국정치 >

만만디(慢慢地).중국인들이 어떤 경우에도 천천히 일을 처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서두르다가 낭패를 보지 않겠다는 치밀한 계산도 깔려 있다.

일각에서 중국은 더 이상 만만디의 나라가 아닌 콰이콰이(快快)로 변했다고도 한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하면서 빨리 돈 벌고 남보다 먼저 잘 살아보겠다는 풍조가 사회 저변에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은 천천히 사태를 관망하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기회를 엿보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기조를 지키고 있다.

돈 버는 데만 그렇지 않다.

외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인들은 외교도 장사처럼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중국을 다녀왔다.

한·중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로 격상시키면서 양국 경제관계 증진을 위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적극 검토하기로 하고,8개에 달하는 경제분야 협력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성과가 있었다는 평가다.

그런가 하면 이 대통령의 방중과정에서 중국이 우리를 무시하는 듯한 대접을 받고 왔다는 비판의 소리도 들린다.

외교부 홈페이지에 한국의 국가원수를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소개한 것,비행장의 대통령 영접 인사의 격이 낮았던 점,주중 한국대사의 신임장을 이 대통령 도착 이후에 제정한 것,한·미 동맹을 역사적 산물로 평가한 것 등이 그런 배경이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외교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모든 나라가 우리의 동맹이요,친구만은 될 수 없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고 하지 않던가.

동맹의 전략도 필요하지만 굳이 주적이 아니라면 동반자의 이익을 함께 고려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왜 마키아벨리가 지도자의 필요한 덕목으로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간교함을 지적했겠는가.

일본이 미국과 강력한 동맹관계를 구축했다고 중국이 일본을 적대시했는가? 오히려 후쿠다 총리와 후진타오 주석의 상호방문으로 중·일 관계는 더 좋아졌다.

중요한 것은 신뢰요 이를 통한 국익의 극대화다.

지난 대선에서 우리 국민들은 경제를 다시 활성화할 수 있다고 믿는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 대통령의 '결과물'이 너무 적다고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 대통령은 당연히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렇다고 움츠러들 필요도 없다.

워런 버핏이,빌 게이츠가,심지어 조지 소로스가 와도 취임 3개월 만에 침체됐던 경제를 되살릴 수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믿음이다.

국민들에게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잘 살게 해주겠다는 신뢰를 주면 된다.

외교에서도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경제외교,자원외교,실리외교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의 분명한 입장은 견지하되 미국에는 미국에 맞게,중국에는 그들의 구미에 당기는 외교정책을 펴면 된다.

그게 소위 '창조적 실용외교'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이 쓰촨성의 지진피해 지역을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방문해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위로하면서 진정한 파트너라는 인식을 중국인들에게 심어준 것은 이명박 실용외교의 첫번째 성과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중국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 기업방문도 필요했지만 더 많은 중국 경제인을 만나 더욱 실리적인 세일즈 외교를 펴지 못했다는 점이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외교는 절대로 사안 하나 하나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된다.

특히 대(對)중국 외교는 편의주의적,단기적 이윤창출형의 실리외교가 아닌,신뢰에 기반한 장기적인 안목에 근거한 실용외교만이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중국을 이겨야 한다는 외교보다는 만만디의 중국과 상생할 수 있는 올바른 실용외교가 더욱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