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10시30분 과천정부청사 환경부 기자실.이병욱 환경부 차관이 긴급 설명회를 자청했다.

브리핑 내용의 골자는 수도사업의 경영 효율성 제고에 초점을 맞춘 물산업지원법 제정의 잠정 연기.수도사업이 민간에 위탁 운영될 경우 하루 수돗물값이 14만원에 달할 것이라는 '수돗물 괴담' 확산이 법안 제정을 미루기로 한 핵심 배경임을 이 차관은 숨기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정책들이 표류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등과 맞물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곤두박질치면서 주요 정부 정책에 대한 추진 동력도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이날 환경부가 밝힌 물산업지원법 입법예고 연기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당초 164개 지방자치단체로 나눠진 수도사업 운영 시스템을 민간위탁으로 전환,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경쟁력 있는 수도사업자를 육성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수도사업이 민영화되면 수도물 가격이 급등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퍼지면서 지난달 입법예고 시점을 한 차례 늦춘 데 이어 4일로 예정됐던 입법예고를 또 다시 미루게 됐다고 환경부는 밝혔다.

환경부의 한 국장은 "수돗물값은 지방의회에서 정하도록 돼 있고 소규모로 쪼개진 수도사업을 민간에 위탁해 대형화할 경우 경영 효율성이 높아져 수도물값이 오히려 싸질 수 있는데도 정책 홍보가 먹히지 않고 있다"고 답답해 했다.

공공기관 개혁 방안도 늦춰지고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날 한국노총과 첫 정책협의회를 갖고 공공기관 구조조정 및 민영화에 대한 정부 방침 확정시한을 '7월'로 연기하기로 했다.

정부가 당초 공공기관 직원의 3분의 1 감원 등을 포함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안을 마련,이달 중 발표할 예정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1개월 이상 로드맵 작성이 미뤄지는 셈이다.

안홍준 한나라당 제5정조위원장은 "공공기관 구조조정 및 민영화와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안이 마련된 상태가 아니다"며 "정책협의회에서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자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한나라당과 정부가 공공기관 개혁을 늦추기로 한 것은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개혁작업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주요 정부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며 청와대가 계획했던 대통령 주재 국정과제보고회도 무기 연기됐다.

청와대는 당초 3일로 예정돼 있던 이 보고회를 쇠고기 파동 등 당면 현안이 해결될 때까지 미루기로 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분기별 계획에 따라 3일로 대통령 주재 국정과제보고회 일정을 잡아놨었으나 각종 현안과 관련된 대통령의 일정이 너무 많아서 계획을 무기 연기시켰다"며 "언제 다시 회의를 열지는 아직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와 청와대는 193개 이명박 정부 국정과제 추진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 해결과 부처별 업무조정 및 관리를 위해 '국정과제점검협의회'를 열고 있으며 분기별로는 대통령 주재로 내각의 장ㆍ차관뿐 아니라 민간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정과제의 성과 과제를 공유하는 국정과제보고회를 열기로 했었다.

박원암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쇠고기 파동과 관련해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급락하고 있는 데다 유가 급등 등의 여파로 경제 여건까지 악화되면서 각종 정책의 추진 일정이 차질을 빚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공공기관 개혁 등 일부 정책의 경우 타이밍이 매우 중요한 만큼 민심 이반 요소를 찾아내 해결한 뒤 정책을 빨리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철수/이준혁/김동욱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