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청 회의실.수도권 민간택지 중 첫번째로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게 될 수원시 구운동 우방유쉘 아파트에 대한 분양가심사위원회 2차 회의가 열렸지만 분양 승인이 보류됐다.

시공사인 C&우방ENC가 신청한 택지 가산비 중 흙막이 공사비 45억원이 실제보다 부풀려졌다는 게 이유였다.

위원회는 "공사비를 재산정해 오라"고 통보했다.

이날 회의 결과를 초조하게 지켜보던 회사 관계자는 "모델하우스를 연 지 벌써 7개월이 지났다"며 "금융권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이자만 한 달에 4억원씩 나간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4월7일 분양 승인을 신청한 뒤 두 달이 다 됐지만 이 아파트의 분양 승인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부활된 지 3년2개월째를 맞은 분양가 상한제가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판교신도시 등 공공택지에만 적용되던 상한제가 지난해 9월 민간택지로 확대된 이후 각종 편법행위와 부작용이 늘고 있다.

핵심 목표인 분양가 인하효과도 기대에 못 미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분양가 심사 부실 우려 커

무엇보다 분양가 심사 자체가 부실 덩어리라는 지적이 많다.

수도권 지자체의 한 분양가심사위원은 "전문가들이 모여있는 심사위원회라고 해도 수많은 자재들의 가격 적정성을 일일이 판단하기가 힘들다"며 "주변 시세와 분양가를 비교해 적당한 값인지 판단하는 데 그치고 있다"고 현실을 털어놓았다.

수원 구운동 우방유쉘만 해도 지난 5년간 분양을 못해 불어난 금융비용을 분양가에 포함시켜 만회하려는 건설사와 주변 집값(3.3㎡당 900만원대)보다는 싸게 보여야 '욕'을 먹지 않는다는 지자체의 지루한 힘겨루기만 계속되고 있다.

상한제 도입 취지에 맞춘 합리적인 분양가 산정과 평가는 온 데 간 데 없다.

지난 3월 말 현재 13만가구를 넘어선 미분양 아파트도 상한제 확대 시행 이후 증가 속도가 더욱 가팔라졌다.

상한제를 피하려고 작년 8월 말까지 서둘러 사업 승인을 신청한 단지들이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무더기로 쏟아지면서 수급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다.

수도권만 해도 미분양이 2만3000가구를 넘었다.

작년 말 이후 석 달 새 거의 1만가구가 늘어난 수치다.

고분양가 논란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준공 후까지 팔지 않은 악성 미분양도 계속 늘어 빈 집이 2만가구를 넘어섰다.

◆분양가 인하효과 찔끔(?)

더욱 큰 문제는 상한제를 적용해도 분양가 인하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점이다.

상한제를 적용받아 지난달 14일 분양한 대구 북구 침산동2차 쌍용예가 110㎡형은 인근의 코오롱 하늘채 2단지 109㎡형(2억3500만원대)보다 3200만원 비쌌다.

지난 4월 공급된 용인 흥덕지구 힐스테이트(3.3㎡당 994만원)도 작년에 인근에서 분양한 아파트 분양가(926만원)보다 7% 더 비쌌다.

여기에다 발코니 트기 등 옵션 비용을 분양가에 합치면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실제 분양가는 더 높아진다.

상한제를 피하려는 각종 편법 분양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들어 상한제가 적용되지 않는 조합아파트나 임대아파트로 사업 승인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상한제를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인위적으로 분양가를 통제하다 보니 아파트 품질에 대한 소비자와 건설사들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최근 판교신도시 입주 예정자들은 화강석이나 대리석이 아닌 저급 마감재(적벽돌)로 아파트 외벽(지상1~3,4층)을 시공한다며 주택공사에 몰려가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고분양가 고리 끊은 긍정 측면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분양가 상한제의 긍정적 측면을 평가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간택지보다 땅값이 상대적으로 싼 공공택지인 은평뉴타운(주변보다 30% 저렴),판교신도시(10% 저렴),인천 송도신도시 중ㆍ소형(47% 저렴)의 상한제 아파트가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부사장은 "상한제 시행 후 집값을 끌어올리는 고(高)분양가의 고리를 끊었다는 점에선 박수를 받을 만하다"고 평가했다.

권주안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상한제 아파트의 분양가 인하효과가 적은 것은 자재값과 땅값이 급등하고 주택품질 향상을 위한 규제비용이 추가되는 등 원가가 많이 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집값이 계속 오르기 때문에 상한제의 분양가 인하 효과가 크지만 반대로 집값이 약세일 때는 인하 효과가 작아 보인다"고 분석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