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 "弱달러가 인플레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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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3일(현지시간) 달러화 약세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를 표시했다.
미 재무장관이 아닌 FRB 의장이 달러화에 대해 언급한 것은 아주 이례적이다.
버냉키의 발언 내용이 시장에 알려지면서 달러 가치가 강세로 돌아설 것이란 기대 속에 국제유가는 큰 폭으로 떨어졌다.
시장에선 '강한 달러'를 언급한 버냉키 의장의 발언에 비춰 FRB가 당분간 기준금리를 내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FRB,환율을 새 정책 수단으로?
버냉키 의장은 이날 국제통화기금(IMF)이 바르셀로나에서 주최한 중앙은행 패널 컨퍼런스 위성연설에서 "달러 가치의 변화가 인플레이션과 기대 인플레이션에 미칠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며 "지속가능한 성장과 낮은 인플레이션을 유지하기 위한 통화정책을 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달러 약세로 인한 부작용을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 달러 약세를 틈타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공격적으로 베팅해 온 투기세력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담겨 있다.
RBC캐피털 마케츠의 아담 콜은 "버냉키 의장의 발언은 정책기조의 변화를 암시한다"며 "FRB가 환율을 통화정책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FRB가 달러 방어를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위험 부담이 큰 '극약 처방'"이라며 "얼마나 약발이 있을지는 두고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와 관련해 억만장자 투자가 조지 소로스는 블룸버그TV와의 회견에서 "금리가 크게 떨어져 달러가 약세를 면할 수 없다"면서 "이 때문에 (달러발) 인플레가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FRB 금리 정책이 한계에 봉착했다"면서 "FRB가 더 이상 금리를 내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무디스닷컴의 마크 잔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문제는 버냉키가 그렇게 강하게 얘기하는 만큼 제대로 뒷받침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라며 "의도한 효과가 나지 않을 경우 시장의 신뢰를 상실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문제가 훨씬 심각해진다"고 경고했다.
버냉키의 이 같은 발언으로 약 달러 흐름이 바뀔 가능성을 보이자 유가는 급락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3.45달러(2.7%) 떨어진 124.31달러에 마감됐다.
지난달 23일 135달러까지 치솟은 이후 10달러 이상 빠진 것이다.
미국 금융감독당국이 원유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 급등을 막기 위해 투기 규제에 착수한다는 소식도 유가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달러화는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달러화 가치는 이날 뉴욕외환시장에서 엔화에 대해 달러당 105.07엔에,유로화에 대해선 유로당 1.5443달러에 거래돼 소폭 강세를 보였다.
◆버냉키 발언 효과 지속되나
유가는 미 금융감독당국의 투기세력 조사와 각국의 유류 소비절약 등이 맞물리면서 당분간 약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급불안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하락폭은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바클레이즈캐피털의 폴 호스넬 애널리스트는 "지난 5년간 공급은 늘지 않은 반면 수요는 꾸준히 증가해왔다"며 "수급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고유가가 해결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달러화 전망은 다소 엇갈린다.
1분기 미국 경기성장률이 당초 예상보다 좋게 나온 만큼 FRB가 경기보다 인플레이션을 중시하는 통화정책을 펼 것이란 측면에서 보면 달러 강세를 예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부동산 침체 영향으로 신용 위기가 재연되면 버냉키 의장이 의도했던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달러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FRB가 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여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마켓워치는 버냉키 발언이 나온 후 외환시장 일각에서 이르면 4일 중 FRB가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않겠느냐는 성급한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익원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