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을 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하지만 절을 세우는 데에는 1000년의 세월로도 부족하다."


한국전쟁 때 빨치산 토벌대장이었던 차일혁 총경(1920~1958년)은 이런 말로 당시 빨치산의 은신처였던 구례 화엄사를 불태우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했다.

차 총경 뿐만 아니다.

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84)은 인민군 소탕을 위해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미군의 명령을 거부해 팔만대장경을 지켜냈고,'오대산 도인'으로 불렸던 한암 스님은 상원사를 소각하려는 국군에 '법당과 함께 나를 불사르시오'라며 버텨 잿더미로 변할 뻔한 천년 고찰을 수호했다.

문화재청은 5일 서울 경복궁 내 고궁박물관에서 한암 스님 등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데 앞장서온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수난의 문화재,이를 지켜낸 인물 이야기>>(눌와) 출판기념회를 갖고 시대를 앞서간 '문화재 지킴이'에게 감사장을 전달했다.

이 책에는 임진왜란 때 사재를 털어 전주사고에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내장산의 은봉암.용굴암.비래암으로 져 나르며 지켜낸 선비 안의와 손홍록,일본 궁내대신 다나카의 경천사지십층석탑 약탈 사실을 용감하게 알린 언론인 베셀과 선교사 헐버트,10만석 재산을 문화재 수집과 보존에 바친 간송 전형필,독도를 지킨 안용복과 독도의용수비대 등의 이야기가 생생한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또 일본의 오쿠라호텔에서 경복궁 자선당 유구를 발견해 되찾아온 김정동 목원대 교수,야스쿠니신사에 방치된 북관대첩비를 발견한 조소앙 선생과 반환에 앞장선 초산 스님,독일 오틸리엔수도원에서 겸재 화첩을 영구임대 방식으로 되찾아온 선지훈 신부 등도 이 책에 실린 '문화재 지킴이'들이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이날 출판기념회에 감사장을 전달한 뒤 "이 분들의 뜻을 살려 더욱 문화재를 잘 지켜나가겠다"고 밝혔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